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편지콘서트' 지상중계
상태바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편지콘서트' 지상중계
  • 김태진 기자
  • 승인 2023.09.16 0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제공] 2023년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 행사 팜프렛​​​
​​​[사진=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제공] 2023년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 행사 팜프렛​​​

[서울=글로벌뉴스통신]사)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를 가다.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지회장 김제옥)는 9월15일(금) 오전 10시 서울 도봉문화원 편지문학관 1층 회의실에서 회원 및 관계자 50여명 참석리에 ‘편지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서울지회 김금희 부회장의 사회로 식전문화행사, 2부 편지콘서트, 3부 느리게가는 엽서작성과 편지문학관에 보관할 타임캡슐 봉안행사 그리고 4부에서는 편지가족 우체통 30집 발간 등 정기간행물 발간을 위한 편지글 기획회의와 향후 활동계획 논의를 끝으로 오후 4시에 마무리 되었다. 
 
행사가 겹친 도봉문화원장을 대신하여 글로벌뉴스통신 문화예술위원장인 문학평론가 김태진 박사(동아대 법무대학원 교수 역임)가 내빈으로 참석하였고, 회장을 역임한 유금준 고문이 행사준비에 수고한 관계자들에게 격려의 인사말을 하였다.

또한 서울지회 김제옥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편지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며 편지콘서트 행사를 잘 준비해준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데 이어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와 4/4분기 활동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 등을 밝혔다. 

​[사진=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제공] 2023년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 행사 사진​
​[사진=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제공] 2023년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 행사 사진​

식전행사는 김금희 부회장의 가야금 독주로 오프닝을 하였는데 곡목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리랑, 오나라, 늴리리야, 홀로아리랑’을 연주하여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심재순 회원이 이기철 시인의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를 낭독하며 1부 행사의 막을 열었다.

 사랑하는 시간만 생이 아니다
고뇌하고 분노하는 시간도 끓는 생이다
기다림만이 제 몫인 집들은 서 있고
뜨락에는 주인의 마음만한 꽃들이 뾰루지처럼 붉게 핀다.
날아간 새들아, 어서 돌아오너라.
이 세상 먼저 살고 간 사람들의 안부는 이따 묻기로 하고
오늘 아침 쌀 씻는 사람의 안부부터 물어야지
햇빛이 우리의 마음을 배춧잎처럼 비출 때
사람들은 푸른 벌레처럼 지붕 아래서 잠 깬다
아무리 작게 산 사람의 일생이라도
한 줄로 요약되는 삶은 없다.
그걸 아는 물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흘러간다.
반딧불만한 꿈들이 문패 아래서 잠드는
내일이면 이 세상에 주소가 없을 사람들
너무 큰 희망은 슬픔이 된다
못 만난 내일이 등 뒤에서 또 어깨를 툭 친다.
생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고통도 번뇌도 힘껏 껴안는 것이 생이다.
나무들은 때로 불꽃 입술로 말한다.
생은 피우는 만큼 붉게 핀다고.

​(사진제공: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2023년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 식전행사 가야금 공연(김금희 부회장)​
​(사진제공: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2023년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편지콘서트 식전행사 가야금 공연(김금희 부회장)​

이어진 2부 ‘편지콘서트’에서는 회원들의 사연이 담긴 편지글을 발표하였는데 김영옥 회원이 ‘그리운 손녀에게’ 정화 회원이 ‘축복의 선물로 다가온 블레싱 회림’을 낭독하였고 신입회원 김현지 회원이 인사소개와 함께 자작 편지글 ‘김광수 선생님께’를 이옥경 회원이 ‘엄마같은 순녀 아지매께’란 안부 편지를 띄웠다. 끝으로 남미선 회원이 ‘늘 존경하는 서미애 선배님께’란 제목으로 자신의 멘토로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이끌어준 선배님에 대한 존경심을 평소에 말로 하지 못하는 마음을 깨알같이 편지글로 적어서 낭독하였다. 
 
이번에 발표된 편지글들은 사단법인 한국편지가족 서울지회 정기간행물인 ‘편지가족 우체통’에 수록될 예정이다.

이렇듯 주옥같은 편지글, 따듯한 글, 아름다운 마음이 구구절절 담긴 사랑의 글들의 향연이 이어졌다. 

2부 행사를 마치고 오찬을 하러 나오는 길에 누군가 콧노래로 흥얼대는 소리가 났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받아 주세요.
낙옆이 쌓이는 날/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보내드려요.
낙옆이 사라진 날/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아름다워요.

​1968년 동숭동 대학가 어느 학사주점에서 서울대 음대생 최양숙이 고은 시인에게 받은 이 시는 이후 1971년 그녀의 1년 후배 김민기에게 작곡을 부탁하여 대중가요로 알려지게 되었다. 콧노래를 들으며 필자는 청춘이던 시절 1973년에 발표된 어니언스의 "편지"를 소환했다. 

말없이 건네주고 / 달아난 차가운 손 / 가슴 속 울려주는 /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 내려간/ 너의 진실을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
멍 뚫린 내 가슴에/ 서러움이 물 흐르면 /떠나버린 너에게 / 사랑 노래 보낸다.// 이다.

​또 다른 편지는 세대를 건너 필자의 아들이 부른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도 아련하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모든 것이 새롭다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행사를 다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여인이 쓴 무덤 속 편지글이 생각났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애틋하게 그리는 정이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절절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무덤 속 편지글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며 아내가 쓴 이 편지는 수백년 동안 망자(亡者)와 함께 어두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장하는 과정에서 1998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내는 지아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하고픈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종이가 다하자 모서리를 돌려가며 써 내려갔다. 모서리를 채우고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하자 아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거꾸로 적어 나갔다. 아무리 넓은 종이라 한들 할 말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으랴! 
애틋한 마음 담아 현대문으로 옮겨본다.

원이 아버지 보세요.

당신이 항상 내게 다짐하길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찌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나요.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함께 누워 새겨보곤 했지요.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떻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나는 살수 없으니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으니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리니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는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건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니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자세히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1586)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원이 엄마>

 이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는 전 세계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놀람과 함께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이른바 K-편지의 원조격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카톡이나 문자를 잠시 쉬고 아나로그 감성이 듬뿍 묻어나는 손 편지를 써봄이 어떨까? 가까이는 사랑하는 가족에게, 아내, 남편, 자녀, 부모님께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 마음을 담아 보내는 거 이 가을에 딱 맞는 미션이 아닐 수 없다. 

눈여겨 봐주는 이 없는 이 가을편지 행사가 3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니 감개무량하다. 편지글은 상대를 향한 자신의 성찰 기록이니 이제부터라도 편지문학에 대한 다양한 장르 발굴과 새로운 자리매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