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동안 부천을 지켜온 가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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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부천을 지켜온 가문들
  • 함봉수 기자
  • 승인 2013.12.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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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변씨, 죽산 박씨, 여흥 민씨 등

 부천이 시가 된 것은 올해가 40주년이지만, 부천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고리울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이 출토될 정도로 오래됐다. 수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이 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며 동네를 지킨 가문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부천에도 수 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땅을 살아온 가문들이 있다.

◇ ‘대한민국 변씨삼절’의 밀양 변씨(卞氏)

 <논개>라는 시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와 함께 일제의 탄압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은 3형제인 변영만, 변영태를 배출한 밀양 변씨 공장공파 종중은 이 땅에 정착한 입향조 변예생 이래로 600여 년 동안 고리울 지역에서 살고 있다. 현재 100여 가구 3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부천의 향토문화재 제1호인 공장공 변종인 묘와 신도비가 밀양 변씨의 유적이다.

 ◇2013 부천의 인물 박제환의 죽산 박씨(朴氏)

 550년 전 박철정 이래로 550여 년 동안 부천에서 살고 있는 죽산 박씨 능암공파 종중은 현재 역곡2동 지역에서 모여 살았다. 자신이 가진 농지를 팔아 경기도에 기부해서 부천중학교를 설립했고, 제2대와 제5대 국회의원과 농림부장관을 역임해 부천의 인물로 선정된 박제환이 죽산 박씨이다.

 ◇5000여 명이 부천에서 살고 있는 청주 한씨(韓氏)

 청주 한씨 이양공파 종회는 부천의 뿌리 가문 중 가장 많은 숫자인 1000여 가구, 5000여 명의 사람들이 부천에 살고 있다. 이 가문은 입향조 한언 이래로 520여 년 동안 부천의 계수리와 당아래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부천의 향토문화재로 제2호인 청평군 한언 묘와 묘표, 제3호 청천군 한준 묘와 신도비가 한씨 가문에 속해있다.

 ◇까치울 작동의 여흥 민씨(閔氏)

 510여년 전 여흥 민씨 장령공파 여천위손 작동문중은 입향조인 민종원이 경기도 반월(현재 안산)에서 부천의 까치울 작동으로 이주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현재 40여 가구의 160여 명이 살고 있다. 민경천 전 홍익대 총장, 민경남 부천교육박물관장, 민충환 전 부천대 교수를 배출한 학문의 가문이기도 하다.

 ◇효령대군의 후손 전주 이씨(李氏) 사직공파

 태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효령대군 이보의 4세손인 칠산 이선손의 여섯째 아들 이옥이 조선 중종 때 부천의 내동에 낙향해서 뿌리내린 가문이다. 이옥이 부사직을 지냈기 때문에 사직공파라 부른다. 내동은 부평도호부가 있던 계양으로 가는 골목으로 번성했다. 현재 80~100여 가구 300여 명이 부천에 거주한다. 이형재 전 부천문화원장, 이강정 문학박사, 이돈재 경영학박사, 이휘재 의학박사 등을 전주 이씨 사직공종중 출신이다.

 ◇장말도당굿 지킴이 덕수 장씨(張氏)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의 원류 장말도당굿을 이어가고 있는 가문이 덕수 장씨 영공파 부천종회이다. 장말도당굿은 장말지역에서 300여년이 넘게 이어온 굿이자 축제이다. 1년에 한 번 음력 10월 10일에 열린다. 장말도당굿을 주재하며 조상신의 현신인 장말할아버지 역할을 하는 장현수 씨를 비롯해 덕수 장씨는 부천에 120여 가구 500여 명이 살고 있다.
덕수 장씨는 평택에서 살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이곳으로 이주했다. 입향조는 장몽기이다.

 ◇시우물(현 삼정동) 지역의 밀양 박씨(朴氏)

 밀양 박씨 규정공파 공간공파종회 부천문중은 현재 삼정동 지역의 일부인 시우물에 360여 년 째 살고 있다. 입향조는 박선이며 현재 부천 거주 밀양 박씨는 100여 가구 3~400여 명으로 추산한다. 현 부천문화원장인 박형재를 비롯해 많은 인물을 낳은 가문이다.

 ◇여월동 성곡지역의 원주 원씨(元氏)

 원주 원씨는 여월동의 성곡지역이 집성촌으로 현재 400여 가구 1500여 명이 살고 있다. 원주 원씨 시중공계 문정공파 양부평파대종중 부천종중이 부천에 자리를 잡은 건 입향조 원계철이 230년 전으로 400여 가구의 1500여 명이 거주 중이다. 원각희 전 소사읍장과  원종태 부천시의회 의원이 이 가문 출신이다.

 ◇여월동의 전주 이씨(李氏) 화의군파

 전주이씨 화의군파는 270년 전 입향조 이한규가 여월동에 자리를 잡으며 부천에 살기 시작했다. 10여 가구 30여 명이 부천에 있다. 이한규 묘역은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무에 두루 인재를 배출한 의령 남씨(南氏)

 의령 남씨는 약 400년 전 경기도 광주(현 성남시 태평동)에서 살던 남두추의 아들 남징과 남연이 당시 부평 수역리로 주거지를 옮긴 이후 후손들이 현재의 원종동과 작동, 성곡동 일대에 퍼져 자리를 잡았다. 남징과 남연은 계양팔문장으로 불리울 정도로 문장에 능했고, 그 후손인 남익화는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안주성에서 후금군을 저지하기도 했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부천의 오늘이 있기 까지 이 땅을 수 백 년 동안 지켜온 뿌리 가문의 공도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시 승격 40주년을 맞아 그 고마운 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부천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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