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천도와 청와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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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천도와 청와대 터
  • 심병기 자문위원
  • 승인 2016.06.2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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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글로벌뉴스통신 심병기 자문위원)청와대

[서울=글로벌통신] 한양천도와 청와대 터  

위화도 회군에 성공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 개경(개성)의 민심을 수습하고자  수도를 천도 하기로 마음 먹고 무학대사, 정도전, 하륜 등을  예정지를 물색하러 파견 보냈다.

제일먼저 계룡산 기슭에 터를 잡고자 당도하여 산세를 보니 금계포란형(금닭이 알을 품는형국)에 비룡승천형 (용이 하늘을 승천하는형)으로 국세가 조금 협소하긴하나 산세가 좋아 괜찮은 듯 하여 이름을 "계룡대"라 칭하고 수도를 옮기려 태조 이성계한테 아뢰고 이전준비에 착수 했으나 왠지 공사 진척도 여의치 못하여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기로 작정하고  세 사람을 내려보내 산세와 지세를 살피게 하였는데, 수도로서는 산세와 국세도 이만하면 쓸만하다 판단되어 주산과 좌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논의를 하던중, 무학은  주산을 인왕산으로 하고 좌향을 동향으로 거론 하였더니, 정도전이 펄쩍 뛰며 예로부터 임금은 좌향을 동향으로 택하지 않았고 남향을 택하였다고 반대를 하였는데 하륜 역시 무학대사 이론이 맞다고 거들었다,

그러면 태조한테 아뢰서 좌향을 정하기로하고 개경으로 향했는데 개경으로 가는도중 무학대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 싶어 정도전한테 이르기를 만일 그대의 말과 같이 좌향을 남향으로 한다면 현재의 경복궁 자리가 학이 알을 품고있는 형국이라 학이 푸드득 날개짓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는 형국으로 왕가에 골육상쟁이 끊이질 않고 향후 200백년 후에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 시련을 겪게될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무시하고 태조한테 아뢰었더니 역시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어 마침내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그후 무학대사 예언대로 태종 이방원이 이성계 후궁에서 나온 다섯째 방간과 여섯째 방석이를 임금의 자리에 옹립하려는 계략을 알아차리고 다섯째와 여섯째를 처단하는 골육상쟁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200년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씻을 수 없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됬다.

그런데 현재의 청와대 터의 기운이 워낙 강한 데다가 음기 또한 강하고 교차수맥이 3~4개 흘러 보통 기가 세지않고서는 이곳에서 임기를 채우기가 용이하지 않으며 주산인 북악산 좌측 좌청룡 위치에 규봉(窺峰)이 있어 이 또한 내.외적으로 정권을 찬탈하려는 불길한 징조이며 임기중에도 늘 구설수와 정책의 오류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되니, 설령 임기를 채운다 해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퇴임후에도 병고에 시달리거나 구설수 등 좋지 않은 일로 맘 편하게 생활하기가 용이하지 않게 되어있다. 지금  정가에서는 일부의원이 국회의사당과 청와대를 세종시로 천도하자는 의견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한편, 북한과 근접거리에 있어 이 또한 늘 위험한 처지에 노출되어 있어 한번쯤 정부차원에서도 정책적인 숙고를 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듯 하다. 한 때는 신도안 계룡대로 천도를 생각하고 추진하려 했으나 이 또한 우여곡절끝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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