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세종이 창제하고 국민이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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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세종이 창제하고 국민이 완성하다
  • 김태진 문화예술위원장
  • 승인 2023.10.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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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태진 교수 인문학 DB) 훈민정음 창제목적등을 밝힌 정인지의 서문
(사진:김태진 교수 인문학 DB) 훈민정음 창제목적등을 밝힌 정인지의 서문

[서울=글로벌뉴스통신] 모름지기 세상일은 시초가 있으면 경과 과정을 거쳐 마무리되는 과정을 거듭하는 법이다. 뭔가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불가(佛家)에서는 인연과(因緣果), 즉 인연설로 설명한다.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멸한다.”라는 불설(佛說)에 근거를 둔 연기법(緣起法)이다. 한글을 연기로 비춰보면 세종이 창제하여 백성들이 이를 즐겨 써오다 오늘날 국민들이 완성해 나가는 것이란 생각이다.

올해로 한글날(10.9)은 577돌을 맞는다. 이날은 1446년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를 기념하여 그 독창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리고 한글사랑을 드높이기 위한 날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기록유산(1997년 등재)이다. 한글날은 원래 '가갸날'로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어연구회에서 한글 창제와 반포를 기념하고자 만들었다. 당시에는 한글을 '가갸거겨 나냐너녀' 하면서 배울 때라 '가갸날'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12년(태종 12년) ’충녕대군‘에 봉해진 뒤 1418년(태종 18년) 6월 세자의 자리에 올랐고 그 해 8월 조선 제4대 임금이 된다. 그는 대군 시절부터 아버지인 태종이 근심할 정도로 독서에 진심을 다해, 주자학은 물론이고 천문지리, 음운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전문분야에 해박했다. 재위 시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두고 문제제기하는 신하들을 오래도록 설득했는데 이것이 바로 ‘세종어제 훈민정음[한글창제]’을 가능케 한 세종의 대자대비한 ‘애민 리더십’이 아닐까?

그리고 아픈 개인사를 넘어 집현전 인재양성, 국리민복으로 민초를 향한 큰 꿈을 실현하게 되는데 한글은 그 많은 꿈 중 하나였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에 의해 장인 심온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참형당하는 와중에서도 군권강화라는 새 질서를 위해 슬픔을 감내하며 군주의 덕목을 배워나갔다. 집권 초기에는 태종의 신하조차 품으려 노력했다. 비록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도 언제나 긍정적 측면과 전문적인 능력을 먼저 보려했다. 집현전을 되살려 훌륭한 인재양성과 국리민복 우선정책을 만들어 갔으며 그 정책은 민중들의 꿈과 함께 영글어 갔다.

집현전을 통해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방대한 편찬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세금관련 공법(貢法)의 개혁,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로의 기틀을 공고히 했다. 〈농사직설〉이라는 농부들의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또한 〈신기전기화차〉와 같은 화약 무기를 끊임없이 개발, 국방력을 강화하여 민생우선의 민본정치를 펼쳤다. 그 중 ‘훈민정음’ 즉 한글의 창제는 민초를 개화하고자한 큰 꿈의 실현이자 인류역사상 찬란한 업적이다.세상을 대자 대비심으로 살핀 백성을 자신보다 더 사랑한 임금이라 하겠다. 연기로 볼 때 이토록 훌륭한 성군의 출현은 당시 그에 걸맞게 상부상조하는 덕과 자애로운 복을 지녀 순응하는 민초들이 있었기에 상통(相通) 가능했던 것이리라.

홍수나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을 곧 하늘의 뜻으로 제왕의 자질과 부덕(不德)에 연유한다고 믿던 시절, 세종은 주로 중국 책을 통해 중국 역사와 사례를 익혔다. 나라의 제도적 안정, 왕조의 권위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천문역법이었으나 조선과 백성을 위해 정치를 하려는 세종으로서는 중국의 예를 그대로 조선에 적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중국의 역법으로 조선의 기상현상을 설명할 수 없어 천문학을 연구하고 세종 24년, 마침내 해와 달, 태양계에 속한 행성의 운행을 계산한 최초의 천문역법 <칠정산>을 완성하고 물시계 ‘자격루’도 만들었다. 이는 명나라 천자에게만 허락된 하늘의 금도(襟度)를 깨는 일이었다. 이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을 만들어서 두 번째 금도를 넘어서게 된다. 마침내 금도조차 뛰어넘어 현실을 직시한 실존 군주로서 맞춤형 나라의 틀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이다. 이에 따라 한글 창제직후 세종은 첫 번째로 신하들에게 ‘용비어천가’를 짓게 했다. 둘째로 아들 수양에게 부처님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짓도록 했다. 세 번째로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감탄하여 ‘부처님 공덕이 달이 일천[즈문]강에 비추는 것과 같음을 노래한다.’는 뜻의 찬불가, ‘월인천강지곡’을 스스로 짓는다.
 

(사진:김태진 교수의 인문학 DB) 붓다의 일대기를 한글로 기록한 석보상절
(사진:김태진 교수의 인문학 DB) 붓다의 일대기를 한글로 기록한 석보상절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월인석보’를 펴내면서 신미대사의 도움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고 이후 한글경전을 펴냈음을 볼 때 승속은 물론, 그 어떤 차별 없이 진리와 통섭했음도 알 수 있다. 백성의 눈을 뜨게 한 훈민정음, 소통을 넘어 문화국가원리를 여는 통로가 되고 있다.

“병술(1586)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원이 엄마>”가 ‘원이 아버지 보세요’로 쓴 무덤 속 한글 편지글이 1998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아내가 쓴 이 편지는 400여년 동안 망자(亡者)와 함께 어두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31세의 젊은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애틋하게 그리는 사랑의 한글 편지가 400년 뒤에 배달된 것이다. 이렇듯 한글창제 이후 궁궐은 물론 아이, 아녀자 할 것 없이 민초들은 마음껏 글을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아내는 지아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하고픈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종이가 다하자 모서리를 돌려가며 써 내려갔다. 모서리를 채우고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하자 아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거꾸로 적어 나갔다. 아무리 넓은 종이라 한들 할 말을 어찌 다 적을 수 있으랴! 애틋한 마음을 담아 현대문으로 옮겨본다.

“원이 아버지 보세요.

당신이 항상 내게 다짐하길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찌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나요.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함께 누워 새겨보곤 했지요.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떻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나는 살수 없으니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으니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리니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는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건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니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자세히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1586)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원이 엄마>”

(사진:김태진 교수 인문학 DB) 안동대 박물관 소장,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 사진
(사진:김태진 교수 인문학 DB) 안동대 박물관 소장,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 사진

이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는 전 세계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놀람과 함께 크나큰 감동을 주었다. 이른바 K-편지의 원조격으로 한글이 이토록 애끓는 마음을 구구절절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는 글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눈여겨 봐주는 이는 물론 아는 이도 별로 없는 이 무덤편지를 400여년이 지난 오늘, 한글날에 다시 읽다보니 슬프고도 감개무량하다. 글은 상대를 향한 자신의 성찰 기록이니 이제부터라도 한글날을 맞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줄 씩 한글을 써보길 권면 드린다.

오늘날 우리들은 ‘밤, 별, 꽃, 해와 달, 구름, 바람, 마음, 하늘’ 등 아름다운 언어에서 얻은 영감을 한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위대한 성군 세종을 기리는 이유일터. 이제라도 서로들은 진영논리의 삿된 언어를 멀리하고 그 대자 대비한 마음을 한글에 담아내야할 때가 아닐는지?
                                       

(사진:글로벌뉴스통신 DB) 필자 김태진 교수의 강연모습
(사진:글로벌뉴스통신 DB) 필자 김태진 교수의 강연모습

그리하여 오늘도 최고지도층의 애민(愛民) 리더십을 속절없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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