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박에펠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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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NA)박에펠씨의 사랑
  • 이여진 기자
  • 승인 2022.01.30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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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글로벌뉴스통신DB)이여진 작가.
(사진:글로벌뉴스통신DB)이여진 작가.

[청주=글로벌뉴스통신]제1회 글로벌문학상 수상(소설부문 우수상).

아버지는 에펠탑을 사랑하였다.

한 번도 당신의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낸 적은 없었기에 애석하게도 나는 아버지의 유품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 오래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사진 앞에는 에펠탑 모양의 연필꽂이가 놓여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선물로 드린 휴대용 가방에는 작은 에펠탑 고리가 달려 있다. 동일한 모양에 큐빅이 몇 개 빠져 있는 귀걸이도 있다. 아버지의 귀는 뚫려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귀걸이의 존재는 아버지의 에펠탑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에펠탑의 형상을 한 이 모든 것들은 어디에 숨어있었기에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야 내 앞에 나타난 걸까. 어느 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겠지. 때때로 아버지의 손길을 받았을 테고. 그러니 아버지의 손길이 없어지자 밖으로 나온 거겠지. 이 에펠탑들은 아버지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나와 같은 처지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의 기다림이 더 애달플 수밖에 없다.

 

아버지를 데리고 에펠탑을 보러 갔어야 됐어. 나는 작게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에펠탑을 보러 갔어야 됐어요. 나는 아버지를 향한 말을 내뱉었다.

아버지를 데리고 에펠탑을 보러 갔더라면……. 내 머릿속에서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버지를 대신해 에펠탑을 보러 갈 수는 없었다. 그럴 돈도, 시간도, 여유도 내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여러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죽은 부모의 유품을 발견해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는, 그런 일은 내겐 판타지에 가까웠다.

내 인생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니까.”

나는 다시 작게 말하곤 아버지의 방에서 나왔다.

엄마, 나 이만 가볼게.”

그래. 차 막히기 전에 얼른 가.”

 엄마는 거실 바닥에 앉아 밤을 깎고 있었다. 가을이 찾아오면 아버지가 자주 하던 일이었다. 아버지는 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밥과 안치면 포슬해지는 식감을 엄마가 유난히 좋아하였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어딘가에서 밤을 한 봉지씩 갖고 오곤 했다. 밤은 김치냉장고 오른쪽에 줄어들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고 깎아 둔 밤은 겨울이 되고 나서도 부단히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수능을 보던 날의 추위보다 도시락에 들어있던 찐 밤들이 더 생생한 기억으로 내게 남게 됐다.

 

집은 고요했고 새벽도 아니었기에 큰 소리로 말해도 됐지만, 우리는 바깥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행여나 묻힐까봐 신경을 곤두세운 사람들처럼 우리가 낼 수 있는 소음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엄마, 아버지는 뭘 좋아했어?”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에펠탑을 좋아했어?”

다시, 좀 더 명확하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게…….”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청주로 내려가는 길에 나는 에펠탑 모양의 조형물을 보았다. 에펠탑과 생김새는 같지만 크기며, , 가치조차 다른 그냥 커다란 물체에 불과한 이것은 여기를 지나칠 때면 종종 본 적이 있는 무엇이었다. 주변에 줄지어 있는 관광이나 캠핑용 집들은 그 가짜 에펠탑처럼 어딘지 어색하고 모조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몇 년 전 대학생 시절, 아버지와 이 물체를 봤다는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날은 아버지가 택배 상하차를 관둔 날이었다. 시험 때문에 새벽에도 깨어 있던 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안방을 지나치다가 아버지 또한 깨어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가 출근을 해야 되는 시간이 임박했기에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오늘은 안 나가? 벌써 5시가 다 되어가.”

오늘은 나가지 않아.”

아버지는 그날 거짓말을 하였다. ‘오늘은이 아니라 오늘부터였으나 아버지는 마치 휴가를 받은 사람처럼 답하였다.

그래? 그럼 더 자. 피곤할 거 아니야.”

지영아, 학교 몇 시에 가니. 아빠가 태워다 줄게.”

추운 겨울, 새까맣기만 한 어둠 속에서 아버지의 총명한 눈동자만이 밝게 빛나 보였다. 불을 켜야 되나 고민했지만 이 대화는 금방 그칠 거 같았다.

“10시 시험이라 830분에는 터미널 가게. 더 주무세요.”

그래. 지영이 너도 얼른 자. 조금이라도 자야 외운 게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가서야 내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다시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얼른 잠들기만을 바랐다. 아버지는 늘 잠이 부족한 사람이었으니까.

잠을 많지 자지 못했음에도 아버지의 눈동자는 어떻게 그리 빛났을까. 이건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눈동자를 보지 못하는 현재, 나는 그랬다고 믿고 싶다. 사진이 포착할 수 없는 빛을 아버지는 지니고 있었다고.

 

그날 프랑스문화테마기행이라는 시험을 보았다. 일반교양 수업이었다. 전날 내내 프랑스에 관한 공부를 했고 프랑스로 꽉 찬 시험지를 풀고 나와서 그런지 그 조형물이 눈에 띈 걸 수도 있다. 건축물이라 봐야 할지, 동상이라 칭해야 될지, 나무 조각품이라 불러야 될지, 에펠탑을 따라 한 건 분명하지만 뭐라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는 그 어정쩡한 물건은 마치 나와도 같아 보였다.

너도 너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

9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때 폄훼한 일에 대한 사과를 늦게나마 전하게 됐다.

 

아버지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인문대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날은 시험이 하나밖에 없었다. 통학생이었기에 시험이 몰려 있기를 바랐지만 시험이 3개 연달아 있다 해도 아버지는 묵묵히 주차장에서 기다릴 게 분명했다. 건물에서 얼른 나와 아버지의 차 문을 열었다. 차 안에는 교내 카페에서 파는 에이드 두 컵이 있었고 졸다가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내게 에이드 두 컵을 다 내밀었다.

왜 두 개나 샀어?”

뭐가 맛있는지 모르니까. 아무 거나 집어. 노란색이 레몬, 초록색이 포도였나.”

내가 레몬 에이드를 마실 동안 다른 한 컵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집에 도착하고 아버지에게 포도 에이드를 내밀었으나 아버지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결국 그 에이드도 내가 마시게 되었는데 포도가 아닌 청귤 맛이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가 에이드를 마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주로 따뜻한 라테를 마셨다.

 

아빠, 에펠탑이 왜 에펠탑인 줄 알아?”

차 안에서 심심해진 나는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글쎄다.”

에펠탑을 만든 사람이 에펠이기 때문이래. 귀스타브 에펠.”

정말?”

나는 뒷 좌석에서 아버지의 옆모습을 보며 말을 하였는데 그 순간 아버지의 눈이 조금 커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구나. 그래서 에펠탑이었구나.”

별 생각 없이 꺼낸 얘기였는데, 아버지는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큰 목소리를 냈다.

그래, 그랬지.”

뒤이어 여운이 남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펠탑, 멋있지.”

뒷말은 혼잣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차에는 둘밖에 없었기에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빠, 우리 다음에 같이 파리 갈까? 우리도 유럽 여행 가보자.”

유럽 여행은 대학에 입학하고 여러 번 되뇌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올 수 없음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다. 그저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아버지가 그 말에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좋아. 에펠탑을 보러 가자. 라고 했는지,

좋아. 에펠탑도 봐야지. 라고 했는지, 그도 아니면

좋아. 가장 먼저 에펠탑을 보자. 라 했는지.

어쨌든, 아버지의 대답에는 에펠탑이 확고히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조수석은 언제나 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향집에 갈 때마다 주워 온 온갖 것들이며 먹고 남은 쓰레기들은 자잘했지만 금방 쌓였다. 가장 위에는 가죽으로 된 다이어리 하나와 너덜해진 책 몇 권이 있었다. 다이어리에는 번호와 계좌, 월급 내역이 적혀 있다고 했다. 책들은 한자로 보는 고사성어, 명심보감, 산에서 만나는 약재 같은 제목이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로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건지, 난잡한 차 안에서 몇 번이고 떨어지기를 반복한 건지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그 책들은 지금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 있다. 그 후로 3년 정도 지나 아버지는 다른 중고차를 구했고 어느 순간부터 조수석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책장을 보고 놀란 건, 그 표지부터 더러운 책들과 함께 두께는 제각각이어도 크기는 평균적인 책 몇 권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여행기, 루브르 박물관 이야기, 문화로 보는 프랑스……. 그런 제목의 책들이었다. 책들은 발행 시기가 모두 2000년대 초반으로 헌책을 구입한 거 같았다. 속지는 누랬지만 나와 같이 차를 탔던 책들에 비하면 깨끗해 보였다. 프랑스 여행기란 책의 목차에는 에펠탑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잉크가 번진 동그라미는 헌책의 원주인이 그린 건지, 아버지가 표시를 해 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작은 동그라미에서 아버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말이라도 해 주지.

아버지가 하지 못할 말을 내가 진심 없이 내뱉은 바람에 나는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날의 내 말을 내내 담아두고 있었던 걸까.

아버지는 나보다 현실을 더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아버지 또한 그 바람이 실현되지 못함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왜 그렇게 프랑스, 내지는 에펠탑에 애정을 보냈던 걸까?

 

아버지의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아버지는 택배 상하차를 관두고 몇 년 동안 여러 잡다한 일들을 전전했다. 그러다 2년 전부터 편의점 납품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떠난 날은 쉬는 날이었다고 들었으나 100일 정도가 지났을 때, 쉬는 날이 아니라 일을 또 다시 관두게 된 날이라고 엄마가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럼에도 트럭을 끌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나선 거였다. 아버지는 어디를 가고 싶었던 걸까.

엄마,

아버지는 에펠탑을 보고 싶었나 봐요.

아버지는 에펠탑을 보려고 나갔나 봐요.

아버지는 에펠탑을 보기 위해 그 큰 트럭이라도 몰고 나간 건가 봐요.

생각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어떤 말도 고를 수 없어, 나는 결국 핸드폰을 들지 않았다. 가짜 에펠탑은 이미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아빠가 떠나고 본가에 내려가는 횟수가 잦아졌다. 정확히는 엄마의 부름이 늘어난 탓이었다.

지영아 왜, 네가 저번에 아버지가 에펠탑 좋아했냐고 물었잖아.”

엄마가 마늘을 빻으며 말했다.

, 그랬지.”

엄마도 최근에 짐들 정리하다가 알게 됐어. 에펠탑 모양의 물건들이 많이 나오더라고.”

 “그러니까. 많더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고등학생 때 불어를 배웠거든. , 그때는 불어 아님 독어였거든.”

 “.”

 “그래서 그런가, 네가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어 아님 중어를 골라야 된다고 했을 때 아쉬워했던 거 같아.”

 “?”

 “그냥……. 아마 네가 불어를 배우게 되면 뭔가 공통점이 생기니까 그랬던 게 아닐까.”

 “아빠 프랑스어 할 줄 알았어?”

 “옛날에 좀 할 줄 알았지. 자기가 배운 것 중에 가장 재밌었던 게 불어였대. 연애 때 엄청 얘기해댔는데 엄마도 잊고 있다가 떠오른 거 있지. 대학에 가게 되면 불문학을 전공할 거라고도 했어.”

 나는 의외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지금의 아빠에게 불어는 의외인 점이 아니었다.

 “그런데 뭐 고졸로 마쳤으니. 할아버지가 기계와 관련된 쪽이면 몰라도 글 배워먹는 곳은 안 된다고 하셨나봐. 그래서 그 좋아했던 불어를 다 까먹게 됐다고 했어.”

 “……. 그렇게 좋아하면 계속 공부하지.”

 “혼자 배울 수야 있었겠지. 그런데 그러기는 싫었대. 불어를 들으면 서러웠던 기억이 떠오르니까 그냥 멀리해 버린 거 같아.”

 엄마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다시 마늘을 빻기 시작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아빠의 방 앞을 서성였다. 내 방이었던 게 아빠의 공간이 된 거라 노란색 꽃이 흐드러져 있는 방의 벽지와 아빠의 조합이 처음에는 웃겼다. 그 벽지는 초등학생 때 이 집으로 이사 오며 내가 선택한 디자인이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방에서 사진을 찍는 게 부끄러울 만큼 벽지가 보기 싫어졌었다. 부모님은 도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냐며 그냥 지내라 하여 나중에는 괜히 이 벽지를 선택한 어린 내가 미울 정도였었다. 촌스러운 벽지는 내 머리에 맴돌고 있는 가짜 에펠탑과 잘 어울리는 거 같았다.

 “엄마. 에펠탑을 만든 사람 이름이 에펠이거든?”

 방에서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해보았다.

 “갑자기 또 뭔 소리야.”

 “내가 이 얘기를 아빠한테 했을 때 아빠가 엄청 신기해했단 말이야.”

 “그런데?”

 “아빠가 불어를 그렇게 좋아했다면 이 얘기를 과연 몰랐을까? 에펠탑 관련해서 선생님이 말씀해주거나 교과서에 나왔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거야 모르지. 그 시절 외국어 교과서가 지금처럼 좋았는 줄 아니. 그리고 고등학생 때 배웠던 걸 누가 기억해. 몇 십 년 동안 까먹고 있다가 네가 말해주니 괜히 신기했나 보지 뭐. 아니면 아예 몰랐다거나.”

 “내가 아빠의 불씨를 살렸나 봐. 얘기하지 말 걸 그랬어.”

 갑자기 눈물이 떨어져 뒷말은 뭉개지고 말았다. 작은 소리가 아닌 큰 소리로 말해 나의 울음 또한 전달이 된 건지, 엄마는 당황해하며 내게 오다가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손을 씻고 다시 다가왔다.

 “주책이야. 갑자기 왜 울고 그래.”

 “아빠한테 몹쓸 짓을 한 거 같아서. 내가 아빠한테 그 얘기하면서 파리 여행 가자고 했단 말이야. 그냥, 그냥.”

 나는 머릿속에서 말을 골랐다. 더 이상 거짓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 말이 튀어나와버렸어. 나는 별 생각 없이 한 건데 아빠는 그 말에 기대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죄송해 죽겠어? 별 게 다 몹쓸 일이다. 그런데 박지영, 너 오늘은 왜 아버지라 안 하고 아빠라 그래?”

 “그러게.”

 나는 엄마를 마주보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갑자기 그리 부르는 걸 보고 내가 얼마나 기가 찼는지 알아? 그런 오글거리는 호칭을 아버지가 좋아나 하겠냐고.”

 “엄마도 아버지라 부르잖아.”

 “엄마가 부르는 거랑 같니. 나이 먹고 그게 익숙해진 거지. 너는 워낙 허물없이 지냈잖아. 아버, 아니 아빠랑.”

 

 “엄마,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정말로 아빠를 대신해서 프랑스라도 가야 되는 걸까?”

 엄마와 늦은 점심을 먹다 말고 물었다.

 “또 실없는 소리한다. 네가 가는 거지, 그게 어떻게 아버지를 대신하는 거야.”

 엄마의 대답에 나는 더 말을 보태지 않고 국물을 떠마셨다.

 “네 아버지도 즐거웠겠지.”

 엄마가 수저를 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이 들면 더 이상 재밌어질 게 없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뒤늦게 프랑스에 빠져서 이것저것 모아댔잖아. 빠진 게 아니라 돌아온 건가. 어쨌든 재밌었으니 몰래 숨겨가면서까지 그랬던 거겠지.”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말을 들어도 마음은 여전히 찝찝하였다.

 “지영아. 아버지한테 죄송하면 죽어라 프랑스 사진들 보고 책 읽고 불어라도 들으면서 프랑스에 익숙해져 봐. 아버지처럼.”

 나는 엄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면 꿈에 나오지 않겠어? 꿈에서라도 아버지랑 프랑스를 거닐 날을 기다려 보라고.”

 “엄마 진심이야?”

 꿈에서 아빠와 만나라니, 그것도 프랑스를 여행하라니.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싫음 관둬라. 네가 하도 심각하길래 나름 고심해서 내린 답이구먼. 얼른 먹어.”

 엄마도 웃으며 다시 수저를 들었다.

 “아니야. 좋은 생각인 거 같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거잖아.”

 “아버지 방에 있는 프랑스 책들 다 챙겨가든지. 먼지가 소복하게 쌓였을 거다.”

 

신발을 신고 엄마와 마주했다. 내 손에 들린 종이가방 안에는 아빠의 책들이 담겨 있다. 엄마도 갑자기 펴진 내 얼굴을 보며 자꾸만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지영이 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울해지니까, 엄마는 그게 너무 슬펐어.”

그럼 엄마는 나 때문에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았던 거야?”

아니. 엄마도 힘들지. 지영이 너도 힘들 거고. 누군가의 영원한 빈자리는 메울 수도, 메워질 수도 없는 거잖아. 빈자리를 볼 때 서글퍼지는 것까진 막을 수 없어. 그런데 오지 않을 빈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 돼. 빈자리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자주 기웃거리기만 하자. 아버지가 바라는 일이 그거일 거야, 엄마가 장담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아버지만 생각하면 더 지칠 테니까 아버지가 좋아했던 프랑스인지 뭔지 그 친구를 데려가라고 한 거야. 아버지 친구랑 대화하면서 아버지를 더 기억하는 게 어떻겠니.”

에펠탑 친구랑?”

그래. 그 친구랑도.”

엄마는 말을 마치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엄마. Merci.”

문을 닫기 전 쑥스러움을 참으며 엄마에게 말을 하였다. 엄마도 알아들은 것처럼 다시 한 번 피식 웃어 보였다. 나는 아빠의 목소리로 이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를 상상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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