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여 고려에 원병을 요청하자 급히 내려왔으나 팔공산 근처에서 견훤의 포위망에 걸렸을때,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복장으로 갈아 입고 왕의 말을 타고 싸우다 파군재에서 김락 장군과 함께 전멸 하였다. 견훤이 신라 경애왕도 그때 죽였으니 무적이었다.
신숭겸 장군이 왕건을 피하게 하자 가까스로 뒷산 왕산(王山)을 돌아서 포위망을 벗어나 산기슭 넓은 바위에 앉아 왕건이 잠시 쉬며 숨돌린 바위를 독좌암 (獨坐岩)이라 부름.절의를 지켜 왕건을 대신하여 싸우다 전사라였고, 견훤의 군사가 왕건 인줄 알고 신숭겸의 목을 잘라 가져갔다. 절의를 지켜 싸우다 장열히 전사하니 장열공 (壯烈公)이란 시호가 내렸다.
왕건이 돌아와 목이 없는 시체를 찿아 돌아가 光海州라 불렸던 지금의 춘천의 명당에 후하게 예우하여 장사 지냈다.
이 묘자리는 본래 도선국사가 왕건의 사후 묫자리로 찍어놓은 대명당이었으나, 자기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숭겸 장군의 묘를 쓰도록 내어 주었다.
이곳에 장례를 할때 목이 없는 시신이라 황금으로 머리 두상을 만들었으니, 훗날 도적의 도굴을 막기위해 묘의 봉분 셋을 만들어 위장하니 현재까지 봉분이 3기이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은 본래 성씨가 없는 常人이었는데 공이 있어 왕건이 평산신씨로 사성했고,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대구 팔공산 아래에서 전사했으며 춘천에서 장사했다. 사진은 상부의 묫자리에서 내려다본 묘앞 전망이다. 낙낙장송 소나무숲이 묘의 기운을 한층 돗구어 주는 대명당임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