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오렌지 원산지 검증 완화, 한미FTA 개정
상태바
미국산 오렌지 원산지 검증 완화, 한미FTA 개정
  • 김서정 기자
  • 승인 2014.05.15 0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선 의원.

 미국이 TPP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던 미국산 오렌지 등에 대한 원산지 검증 완화 요구에 대한 한미 양국간 합의가 한미FTA 개정에 해당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앞둔 지난 4월 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품질보증서를 원산지 입증 서류의 하나로 인정하는 합의서를 미국과 교환했다. 2012년 3월 발효한 한미 FTA는 농ㆍ축산물 원산지 검증에서 한국 관세청이 미국 기업에 원산지 증명 서류를 요구하거나 현지 검증을 진행하는 ‘직접검증’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 농무부 등이 발행하는 품질보증서를 원산지 입증 서류의 하나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같은 원산지 검증 완화는 한미FTA에서 합의한 원산지 인정 방식이 아니다. 미국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Inside US Trade)>는 지난해 7월 이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한국이 (오렌지주스가) 미국산이라는 충분한 증거로 미국 농무부 품질 보증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한·미 FTA의 어떤 곳에서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더 큰 문제는 미국 농무부에서 발행한 품질보증서가 원산지 입증을 위한 적절한 서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달 26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올랜도 센티널(Orlando Sentinel)>은 “미국 생산업자들은 한국으로 수출된 오렌즈 주스 농축액은 미국산 오렌지만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미 농무부가 만든, 별 소용이 없는 증거(품질보증서)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박주선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광주 동구)은 “원산지 검증은 FTA 무임승차를 막기 위한 기본적 장치다. 협정에도 없고, 원산지 입증서류로 적절하지도 않은 ‘정부 발행 보증서’를 원산지 입증서류로 인정한 것은 TPP 조급증에 빠진 정부의 ‘졸속협상’이요, 한미FTA 개정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한미 FTA는 서한이나 합의서도 협정문 본문과 효력이 같은 만큼, 해당 합의서를 공개해 한미 FTA 개정에 해당하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원산지 검증 완화 문제는 미국산 오렌지쥬스의 원산지 인정 여부에서 시작됐다. 한국으로의 수출관세율이 54%였던 미국산 오렌지주스 농축액 관세율은 2012년 3월 한미 FTA 발효 후 `제로(0%) 관세`로 변경됐다. 그러나 관세청은 지난해 2월 미국 오렌지 농축액 수출업체 4곳이 브라질 등 다른 국가로부터 농축액을 수입, 가공해 한미 FTA에서 정한 원산지 규정을 위반한 단서를 포착해 고강도 조사를 벌였으며, 추가적인 원산지 증빙을 요구했다.

 <올랜도 센티널>은 “한국이 미국 농축액의 원산지에 관하여 의심하는 첫번째 이유는 미국과 브라질의 오렌지 회사들간의 긴밀한 관계였다”면서, “최소한 3개의 플로리다 회사들이 브라질과 관계를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의 과일을 혼합하여 추출하는 것은 주스산업계의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이 지나치게 엄격한 원산지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지난해 12월 TPP 선결조건으로 △원산지 검증 완화를 비롯, △금융회사의 고객 데이터베이스(DB) 공유 △자동차분야의 비관세 장벽 완화 △유기농 제품의 인증시스템 등 TPP 참여의 4대 선결조건을 제시하면서 TPP 참여를 위해 서두르는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한편 한국 관세청은 지난 3월 24일부터 나흘간 미국 현지를 방문해 오렌지 원산지 증명을 위한 현장 실사와 협의를 진행했으며, 지난달 4일 산업부는 미국 농무부가 발행한 품질증명서를 원산지 증명서류로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4월 9일 미국 오렌지 농축액 수출업체 4곳에 대한 수출입자 서면조사 및 현지검증결과 오렌지주스를 미국산으로 인정한다고 판정했다.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는 지난해 7월에 보도한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오렌지 원산지 문제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이유로 한국에 수출하는 회사들이 실제 브라질 회사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오렌지 시장의 최대기업인 브라질 회사인 쿠트랄리(Cutrale)와 시트로수쿠(Citrosuco)는 플로리다에서 오렌지주스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알다시피 오렌지 시장은 독과점 시장이다. 최대 기업인 쿠트랄리와 시트로수쿠, 그리고 다국적 기업인 카길(Cargil Citrus)의 생산량을 합치면 브라질 시장의 약 75%다. 이들을 중심으로 브라질이 전 세계 시장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농축 오렌지 공급업체인 쿠트랄리 그룹은 전세계 오렌지 시장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라틴아메리카의 희망 브라질>)

 한편 1년여 만에 냉동 오렌지주스 원산지 검증 문제를 해결한 플로리다 오렌지조합 마이크 스파크스(Mike Sparks) 대표는 올랜도 센티널에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에 유리한 합의가 이뤄졌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산지 검증 완화와 관련해 미국과 합의한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산업부와 관세청은 박주선 의원이 요청한 “한미 양국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증명서를 원산지입증 서류의 하나로 상호인정하기로 한 합의’의 합의문은 물론, 진행경과나 합의문의 주요내용조차 답변을 거부했다. 박 의원은 “이번 합의가 한미FTA 개정인지를 확인함은 물론, 미국이 TPP 선결조건으로 내건 원산지 검증완화 품목으로 합의한 대상이 오렌지 이외에 어떤 품목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는 즉각 합의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