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옥산서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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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옥산서원 소개
  • 오병두 기자
  • 승인 2015.02.1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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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 선생 배향 그 이듬해 서울 도봉서원 완공
   
▲ (사진:글로벌뉴스통신 오병두 기자)옥산서원의 편액 모습.

[서울=글로벌뉴스통신]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회재 이언적선생을 모신 옥산서원(玉山書院) 전경입니다. 경주의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1533)사 후 그의 학통을 계승하기 위해 경주지역 유림들에 의해 건립된 서원으로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2대 서원이다.

 이언적 선생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되었다. 옥산서원은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고, 그 다음 해에 임금에게서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572년 2월에 시작하여 8월에 총 40칸의 건물이 완성되었는데 강당인 구인당(求仁堂), 무변루(無邊樓), 양진재(兩進齋),해립재(偕立齋), 사우인 체인묘(體仁廟), 역락문(亦樂門)은 영의정 노수신이 명명하고, 현판은 당대의 명필인 석봉(石蜂) 한호(韓濩)가 썼다.

 이어 1573년 2월 16일에 인근 서악서원(西岳書院)에 봉안되어 있던 이언적의 위판(位版)을 옮기고 처음 향사를(享祀)를 행하였으며, 12월에는 중앙에 보고하여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때 편액은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산해(李山海)가 교서를 받들어 썼다. 그 후 구인당의 화재로 소실되자 다시 사액을 받았는데, 이 때의 편액은 당대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썼다.

 회재선생은 양재역 벽서사건이 있었던 해인 56세에 윤원형 등의 모함으로 평안도 강계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옥산서원의 건물배치는 강학공간인 구인당이 앞에 있고, 제향공간인 사당이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墓)의 형식인데, 다른 서원에 비해 건물이 많은 편으로, 서원의 중심 건물인 강학당(구인당)과 동재, 서재를 비롯하여 무변루라는 누각과 사당, 신도비각, 어사각 등의 건물들이 있다.

 서원 동남쪽에 1972년 후손들이 세운 청분각이 있는데, 이언적의 ‘수필고본(보물 제586호)’과 김부식의 ‘삼국사기’ 완본 9권 등 많은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옥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선생의 저서와 역대 명인들의 글씨와 문집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서원 건물 이외에도 서원 앞 계곡을 흐르는 자계천이 너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자계천은 자옥산에서 흘러내린 계류로 점판암 같은 넓은 바위들이 펼쳐져 있고, 주위로 나무가 우거진 아주 멋진 계곡이다. 계곡에 작은 폭포도 하나 있는데, 이 폭포 아래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외나무다리가 하나 놓여 있어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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