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2월의 독립운동가 이수흥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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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월의 독립운동가 이수흥 선생 선정
  • 오병두 기자
  • 승인 2015.01.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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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글로벌뉴스통신 오병두 기자)이수흥 선생 동상
[서울=글로벌뉴스통신 오병두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이수흥 선생을 2015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고 밝혔다.

기간 : 2015. 2 1 ~ 2. 28 ❍ 장소 :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

내용 : 이수흥 의거 관련 호외 등 관련자료 13점 이수흥 선생은 1905년 9월 11일 경기도 이천군 읍내면(邑內面) 창전리(倉前里)에서 이천 출신의 대학자 외암(畏庵) 이식(李拭)의 후손이자 이일영(李日瑩)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천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하고 한 때 승려생활도 했던 선생은 1923년 만주로 망명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고 지린성(吉林省) 액목현(額穆縣)의 신명무관중학(新明武官中學)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직속부대로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가 결성되자 1924년 참의부에 가입해 제2중대 특무정사(特務正士)로 활동했다.

1925년 일제 경찰의 기습 공격으로 참의부원 다수가 전사한 고마령(古馬嶺) 참변 이후 이수흥 선생은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1926년 5월 국내로 돌아와 의열투쟁을 시작했다. 선생은 황해도 평산·서울·경기도 안성·여주·이천 등을 무대로 군자금 모집, 일제 순사 및 친일부호 처단, 면사무소·헌병경찰관 주재소 공격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일경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선생의 활동은 1926년 11월까지 계속되었으나 반역자의 밀고로 끝내 일경에 붙잡혀 1928년 7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선생은 일제 재판부에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공소를 포기해 1929년 2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 관련해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2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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