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 김태진의 시문학 살롱, “'뜰 앞의 잣나무' 아래 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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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NA) 김태진의 시문학 살롱, “'뜰 앞의 잣나무' 아래 서다.”(2)
  • 김태진 기자
  • 승인 2023.04.0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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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문학평론가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 “푸르른 날, 시를 찾아 ‘뜰 앞의 잣나무’ 아래 서다.”

「님의 손ㅅ길」

님의 사랑은 철강(鋼鐵)을 녹이는 불보다도 뜨거운 데

님의 손ㅅ길은 너머차서 한도(限度)가 업슴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서늘한 것도 보고 찬 것도 보앗습니다.

그러나 님의 손길가티 찬 것은 볼 수가 업슴니다

국화픤 서리 아츰에 떠러진 닙새를 울니고 오는 가을바람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함니다.

달이 적고 별에 빛나는 겨울밤에 어름위에 쌓인 눈도

님의 손ㅅ길보다는 차지 못함니다.

감로(甘露)와 가티 청량(淸凉)한 선사(禪師)의 설법(說法)도

님의 손ㅅ길보다는 차지 못함니다.

나의 적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 꽃은 님의 손ㅅ길이 아니고는 끄는 수가 업슴니다.

님의 손ㅅ길의 온도(溫度)를 측량(測量)할 만한 한난계(寒暖計)는

나의 가슴 밧게는 아모 데도 업슴니다.

님의 사랑은 불보다도 뜨거워서 근심 산山을 태우고 恨바다를 말니는데

님의 손ㅅ길은 너머도차서 한도(限度)가 업슴니다.

                                                       -  만해 한용운(1879〜1944)

            

(사진:글로벌뉴스통신DB)한용운
(사진:글로벌뉴스통신DB)한용운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 아닌가. 밤낮 근근 살자 하다가 생명이 가면 무엇이 남는가, 명예인가 부귀인가, 모두 다 아쉬운 것이 아닌가. 결국 모든 것이 공이 되고 무색하고 무형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는가. 나의 회의는 점점 커져갔다. 나는 이 회의 때문에 머리가 끝없이 혼란하여짐을 깨달았다.’

만해의 독백은 이어 진다.

나는 나의 전정(前程)을 위하여 실력을 양성하겠다는 것과 또 인생 그것에 대한 무엇을 좀 해결하여 보겠다는 불같은 마음으로 한양 가던 길을 구부려 사찰을 찾아 보은 속리사로 갔다가 다시 더 깊은 심산유곡의 대찰을 찾아간다고 강원도 오대산의 백담사(百潭寺)까지 가서 그 곳 동냥중, 즉 탁발승이 되어 불도를 닦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만해는 출가하여 이 절, 저 절을 운수행각하며 구도의 손길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가 간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법(佛法)’ ‘진리’ ‘님의 사랑’ ‘님의 손길’ ‘조국’ ‘빼앗긴 나라’ ‘나라 잃은 사람들’ ‘사랑 자체이었을까? 시인은 화자-의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며 자신의 내면을 탐구한다. 1연에서 화자는 님의 사랑님의 손을 대비시키면서 자신이 느끼는 온도로 세상을 칭량한다. 시인은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도 차디찬 님의 손과 마주하면서 존재를 스스로 증득하게 된다.

 

‘님의 사랑’은 자(慈)요, ‘님의 손길’은 비(悲)에 다름 아니다. 자(慈)는 애념(愛念: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 여락(與樂)이요, 비는 민념(愍念: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의 고(苦)를 없애주는 것, 발고(拔苦)이다. “대자(大慈)란 일체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대비(大悲)란 일체 중생의 고통을 뽑아내는 것이다”라고 한다. ‘발고여락’이란 곧 ‘대자대비’의 다른 말 표현이다.

이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이다. 모든 중생과 함께 즐기는 불같이 타오르는 행복, 님의 사랑이다. 만 중생의 고통을 한 치의 오차도 남김없이 없애주는 얼음보다 차가운 사랑의 손길이야말로 그 끝 간 데를 알 수 없이 리미트 무한대의 무한도(無限度)이다.

시인은 행여 무엇을 함께 즐기고 어떤 괴로움을 없애주시는 지, 세상사의 모습을 보이며 이를 증명하려 한다. 2연의 “국화픤 서리 아츰에 떠러진 닙새를 울니고 오는” ‘가을바람’이 소슬하다. 행복한 봄, 여름을 지난 인생은 어느새 가을걷이를 앞두고 깊은 시름에 잠긴다. 인생의 작은 소출을 두고 벌어지는 인생사의 전부이다. 그 모든 것이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달이 적고 별에는 빛나는 겨울밤에 어름위에” ‘쌓인 눈’도 언젠가는 한난계(寒暖計)의 지침대로 녹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침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을 화자는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나니 남은 것은 오직 ‘님’ 뿐이다. 그러나 그 ‘님’은 우리의 생각이나 관념 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더구나 짧은 사량 분별로 확인하기란 더욱 그렇다. 선사의 감로법문이 청량하기는 하지만 어찌 불보살님의 대자대비심에 비할까?

화자의 작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은 이제 가을 삭풍을 넘고 남극의 빙산에 이르렀으되 그 어떤 약방문이 그 마음속 홧병(?)을 다스려줄까?  깊은 번민 끝에 화자는 오로지 내가 불보다 더 뜨겁고 세상에 가장 차가운 가슴을 가지고 서야 ‘님’의 한난계(寒暖計)를 가늠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봄이 봄같지 않는 날이 이어지고 민생들의 삶조차 봄꽃 마냥 속절없이 떨어지니 하수상한 시절이 아닌가 ? 아득한 바다, 만해의 불같은 손 길이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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