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문화유산, 고승호(高陞號)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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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문화유산, 고승호(高陞號)를 만나다
  • 송재우 기자
  • 승인 2015.07.2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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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광복 70년 기념 특별전 개최
   
▲ (사진제공:문화재청) 고승호 해저 출토 유물(건륭통보)

[인천=글로벌뉴스통신]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광복 70년을 기념하여 인천광역시립박물관과 공동으로 8월 4일부터 10월 4일까지 특별전「고승호(高陞號), 격랑의 청일해전」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1894년 7월 25일 경기도 안산시 풍도(豊島) 앞바다에서 일본군 함대가 청군 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풍도해전(豊島海戰) 당시 침몰된 ‘고승호’를 주제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이 마련한 순회 전시회의 하나로, 지난 5월 27일부터 7월 19일까지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열린 바 있다.

고승호(길이 72.6m, 적재량 2,134톤급)는 본래 1883년 영국 배로우 조선회사(Barrow Shipbuilding)에서 건조한 증기선으로, 청나라가 조선에서 발생한 동학농민혁명 진압용 군사수송선으로 사용하기 위해 4만 파운드(£)에 임대하였다. 고승호는 풍도해전 당시 병사 1천여 명과 각종 물품을 실고 인천 해역으로 들어오던 중 일본 해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되며, 이 사건은 청일전쟁의 서막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열강의 야욕을 잘 보여주는 고승호 침몰사건은 국제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현재 일본과 중국, 영국, 프랑스 등에 관련 기록물이 전해오고 있다. 당시 고승호에는 청나라의 군자금으로 쓰일 은덩이와 은화 약 600톤이 실려 있었다고 전해온다. 이 때문에 고승호 보물 소동은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 그리고 근래까지 약 10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고승호 인양 유물과 관련 역사 기록물 1,000여 점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물선’ 고승호가 아닌 ‘수중문화유산’ 고승호의 잊힌 역사를 소개하는 동시에, 근대 ‘위기의 대한제국’과 ‘동아시아의 아픈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고승호(高陞號), 격랑의 청일해전」특별전은 총 4부로 꾸며진다. 먼저 제1부 ‘고승호의 항해와 침몰’에서는 풍도해전과 고승호 침몰사건에 대해 알아보고 고승호에서 인양된 은덩이, 무기류, 중국 동전 등 유물을 통해 고승호의 성격을 확인해 본다. 이어지는 제2부 ‘위기의 조선’과 제3부 ‘이방인들의 전쟁’에서는 각종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19세기 후반 국내외 정황과 고승호 침몰사건의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제4부 ‘고승호, 침몰 그 이후’에서는 그간 이루어진 고승호 탐사에 대해 알아보고, 수중문화유산으로서의 고승호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고승호는 아직도 서해에 잠들어 있다. 그동안 일각에서는 ‘보물’을 찾으려는 무모함과 탐욕으로, 바닷속에 잠든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훼손해 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심각성에 공감하여 2001년 유네스코는 ‘수중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제정하였다.

문화재청은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고승호가 ‘보물선 소동’에서 벗어나 당시 국제정세와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근대 동아시아 역사자료이자, 인류 역사의 발자취인 귀중한 ‘수중문화유산’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온전히 보존ㆍ보호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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