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홍익인간사상 : 직무유기를 하는 교육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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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홍익인간사상 : 직무유기를 하는 교육자들
  • 희망봉 기자
  • 승인 2013.01.26 0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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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사들이 발령 받으면 먼저 “홍익인간 이념으로 교육 하겠습니다.”라고 선서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그 내용을 모른다. 그러니 교육법은 있으나 교육법의 교육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교육자들이직무유기를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홍익인간사상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사상이다.”라고까지이다. 그 이상은 아무도 모른다.

 홍익인간사상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라고 하면 弘益의 本質(본질)을 드러낼 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弘益人間 네 글자를 잘못 해석하여 핵심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내용을 모르므로 네 글자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의 해석법은...弘(넓을 홍) 자를 廣(넓을 광) 으로 해석하고 益(더할 익) 자를 利이로울 이 로 해석하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라고 하였으나  
 
김 영돈 선생님의 해석은...弘(클 홍) 자를 大큰 대 로 해석하고 益(도울 익) 자를 助(도울 조) 로 해석 하였다. 
 
 그리하여 弘益人間은“크게 도와라”즉 사람과 사람사이 서로 돕고 살아라!  
서로 돕고 살기 위하여서는 
첫째, 싸움을 하지 않아야 되고
둘째,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상호간에 신뢰관계가 이루어져
셋째, 서로 돕고 사는 것이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사이 相扶相助(상부상조)가 이루어지면 그 보다 더 좋은 평화는 없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의 해석법에 의하여 弘益人間 네 글자를 잘못 해석하여 홍익인간사상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라고 하면 나는 홍익인간사상 앞에 被動(피동) 적이다. 즉 “누가 나에게 이로움을 주겠지”하고 기다리는 자세이다.
그러나 홍익인간사상은 他(타)에 의존하는 依存心(의존심)을 가르친 게 아니다. 홍익사상은 철저하게 率先垂範(솔선수범)을 가르친 교육이다. 
 
 현존하는 모든 종교는 홍익인간사상의 支流(지류)이다.
외래사상에 인식체계가 고착이 된 사람들은 나의 이 주장에 我田引水格(아전인수격)의 주장이라고 하겠지만 저의 글을 계속 따라오시면 역사적 고증과 논리를 들어 六何原則(육하원칙)으로 입증을 하겠다. 누구든지 내 주장과 논리에 수긍이 안 가는 사람은 正論(정론)으로서 論駁(논박)을 해 주시면 고맙겠다.
 
 민족학자 중에 나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대가 그 논리를 내 놓으라고 하면 설명이 궁색하다. 그러나 나는 국민 앞에 말 하건대 종교학을 35년을 공부하였고 각 대학의 종교학과의 교수들은 앞글에서 말 했듯이 모든 종교들은 양보할 수 없는 信念(신념)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상호간에 인정하고 존중하자 는 논리에서 머문다. 원천적인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나는 완전한 해법을 제시하고 천명 할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인류의 원초적인 가르침을 내 놓았었고 세월이 흘러 인류가 확산 되면서 그 족속들의 생활환경의 영향으로 발전(여기에서 발전이라기보다는 퇴보라고보는 게 정확하다)해 온 것이 현존하는 우리가 알고 있고 신봉하는 종교들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민족에게 영향을 끼쳤고 현재도 존재하는 ①불교는 生老病死(생노병사) 四苦(사고)로서 인생은 고달프니 이 고달픈 사바세계를 벗어나 涅槃(열반)에 들자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고, ②儒學(유학)은 修身齊家(수신제가)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로서 현실 정치를 바로 세우자 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고, ③기독교는 인류는 모두가 죄인이므로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므로 예수에게“죄”사함을 받고 천당을 가자는 것이 궁극의 목표이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은 사후문제를 걱정하지 않았다. 현실을 가장 긍정적으로 본 사상이다. 그래서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 고 한 것이다.
 
 홍익인간사상의 궁극 목표는 서로 돕고 사는 協- 어울림으로인류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즉 현실을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법칙을 가르친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 33천이니 용화세계니 하는 것은 인도인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 들이다.
인도인들은 상상력과 수치개념이 탁월하여 사람이 죽은 후에는 이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마음껏 펼쳤던 것이다.
 
 기독교는 구약에는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없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삽입되는데 가톨릭에는 천당과 지옥의 중간에 “연옥”이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연옥은 예수를 잘 믿은 사람은 천당으로 바로가고 안 믿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데 믿기는 믿었으되 그 믿음이 약했던 사람은 연옥에서 대기중인데 그의 후손이 교회의 헌금함에 동전을 넣어 땡그렁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연옥에서 대기하고 있던 영혼이 천당으로 상승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트 개신교에는 연옥이 없다.
 
 가톨릭에서도 지금은 연옥이라는 개념은 사라진 개념이다. 그러니까 시대적 상황에 따라 만들었다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후 세계이다.
구약을 토대로 신약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구약에는 없는 천당과 지옥이 있는가? 나의 책 1권을 읽고 오신 분들은 이해가 될 것이다.
 
 신약에 예수가 13세부터 27세까지 행적이 빠져 있고 28세에 나타나서 선교활동을 하는데 그 사라졌던 16년 동안에는 인도에가서 인도의 사상들을 공부하였던 것이다. 바로 천당과 지옥의 발상은 인도에서 배워 온 것이다. 그러니까 천당과 지옥의 개념은 불교가 시원이다. 
 
 그래서 2권의 책에서는“거짓말은 진리가 아니다.”고 하였다.
우리에게는 현실의 삶이 당면 과제이지 사후세계를 惑世誣民(혹세무민)하여 인류를 겁주지 않았다. 
 
지금부터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교육자들에게 홍익인간사상을 알려서 교육법을 성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적입니다. 
 
 
단기 4345년 11월 17일
檀君의 子孫 弘仁 朴 鑽 羲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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