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의 희망일기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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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의 희망일기 2편
  • 문 태 영 기자
  • 승인 2013.01.2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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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대통령과 클레오파트라

 내 어머니는 레프라(レプラ,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일본에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김소운의 木槿通信에 나오는 글이다.

 15년 전의 1998년 이맘때 쯤 나는 초선의원으로 김대중 대통령취임사 작성을 맡고 있었다.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교수, 이번에 민주당 대선평가를 맡게 된 한상진교수, 서울시 교육감 문용린교수, 원로과학자 김용준교수를 비롯해 많은 지식인이 참여하였다. 그때 초선의원으로 나는 취임사를 정리하고 토론된 내용을 정리했다.

 50년만의 정권교체, 뜨거운 흥분과 감격이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때 제일 격론을 벌였던 것은 ‘제2건국’이라는 개념을 채택하는 문제였다. 나중에 이 명칭은 제2건국위원회로 발전했다. 당시 나는 제2건국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했다. 국민의 정부를 ‘제2건국’이라 부를 경우 역사의 단절을 초래하고 국민통합을 깨뜨릴 것을 우려했다. 나는 지금도 나의 주장이 의미 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제 2의 건국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붙여 주면 합당한 일이고 우리가 스스로 네이밍(naming)할 일은 아니었다. 

 정치는 무엇인가! 많은 주장과 논란이 있지만 나는 정치가 국민을 통합하는 덧셈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덧셈의 정치, 뺄셈의 정치라는 용어는 민주당 分黨이 한창이던 2003년경 열린우리당의 창당, 분열의 정치를 경고하기 위해 내가 만든 말이다. ‘덧셈 중의 덧셈의 정치’는 역사의 단층(斷層)을 극복하는 일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교훈을 얻어야한다. 그 길은 단순하다. 언제나 功은 계승하고 過를 버리는 일이다. 

 나는 중국 현대사에서 文革과 모택동주석에 대한 중국인민과 공산당이 취한 태도에서도 교훈을 얻는다. 특히 개혁개방으로 중국을 이끈 등소평과 그 이후 지도자들이 취한 태도가 분열을 막고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온갖 과오로 점철된 모택동의 사진이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도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도 천안문 광장에 모주석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10년에 걸친 엄청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그를 개혁개방노선을 주장하고 실행에 옮긴 등소평이 과거의 정치로 그들의 삶과 업적을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왜 천안문 광장에는 모택동의 사진이 걸려 있는가! - 2002년 희망일기 )
  다시, 1978년 12월에 개최된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제11기3중전회)로 돌아가 보자. 毛澤東 동지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무산계급혁명가, 전략가, 이론가이다. 그가 10년 동안에 걸친 「문화대혁명」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全생애를 놓고 보면 중국혁명에 대한 공적이 잘못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그의 공적은 1차적이고, 오류는 2차적이다.

 우리는 이번 대선을 박정희 대 노무현의 과거 대 과거의 싸움으로 치뤘다. 승패를 떠나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박정희시대로부터 노무현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지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예비할 때다. 5년 후에는 우리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 미래와 미래의 경쟁을 준비해야 한다. 적어도 몸부림쳐야 한다. 바라기는 이 시기에 민족의 통일이 이뤄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박근혜당선자가 지난 시대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 당선자가 지금 맞딱드리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의 문제, 남북갈등의 문제, 사회양극화의 문제, 4대강을 포함한 대형국책과제의 失政등을 해결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산정(山頂)에는 어김없이 박정희대통령의 동상(銅像)을 만나게 된다.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가장 후퇴 시켰던 10월 유신, 대기업과 재벌중심의 성장일변도 정책, 환경파괴를 불사하고 불도저와 포크레인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건설만능, 개발만능의식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4대강은 이런 사고와 관성 위에서 빚어졌다. 특히 기가 막힌 것은 오늘 감사원이 보이는 태도다. 무엇보다 지금의 감사원은 비겁하다. 권력에 맞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최후의 보루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스스로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이제 와서 4대강이 부실 투성이라고? 4대강사업을 옹호, 강변하던 학자와 국토해양부, 환경부보다 먼저 그동안 4대강사업의 문제점을 축소, 은폐, 지연한 감사원을 감사해야 한다. 

 4대강 밀어붙이기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여의도 밤섬의 쌍바위를 폭파하는 일로 부터 시작된다. 물의 흐름을 막는다며 폭파한 쌍바위의 부서진 살점과 뼈마디는 윤중로의 제방이 되었다.
 옥수동 남쪽 한강에 동서 2킬로 남북으로 865미터 35만 4천평의 아름다운 백사장은 1969년 현대건설이 공유수립매립허가를 받아 파헤쳐졌다. 1972년 저자도는 산채로 뼈와 살이 발라진 채 특혜분양과 부동산투기의 대명사가 된 압구정동을 메웠다. 4대강은 우리의 피 속에 녹아 있던 개발만능의 오래된 습관의 산물이었다.
 박정희 정권시절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던 그때 ‘불도저’로 불리던 김현옥 서울시장(官選)이 있었고 현대건설은 토건주의의 논리와 돌관의식(突貫意識)으로 우리 국토를 파헤쳤다. 그 일이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진두지휘 하에 4대강에서 그대로 再現되었다. 이 모든 ‘오래된 과거’를 정리하고 바로잡는 일이 박근혜정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대선공약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말을 뒤집는 공약폐기론 보다 중요한 일이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자 박근혜 당선인의 오늘이 있게 한 신뢰의 담보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요, 신뢰가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 정권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약뒤집기를 기도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러다가는 공약하지 않는 후보가 가장 좋은 후보가 될 수도 있다. 이러고서야 누가 정치인들을 믿을 것인가. 정치인들이여 대선 후보여 ‘바담 風 하지말고, 바람 風하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깜깜이 인사, 밀봉인사, 不通인수위는 민주주의 후퇴와 소통부재의 단면이다. 국민과의 소통이 막힐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는 이명박정권의 소고기 수입 밀실협상에 대한 촛불민심에서 극명히 들어났다. 박근혜정권은 이명박정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박근혜당선인의 성공은 그 자신의 성공은, 물론 박정희대통령의 공을 넓히고 그의 과를 줄이게 될 것이다. 나는 박정희대통령은 역사에 지울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은 이번에 박근혜후보를 선택했다. 당연히 우리는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그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박근혜대통령이 만드는 역사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우리의 역사이고, 클레오파트라와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어머니처럼 소중한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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