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다산 정약용 유적지 소감 - 남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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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NA)다산 정약용 유적지 소감 - 남양주
  • 송영기 기자
  • 승인 2021.07.15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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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남양주 팔당 소내포구 근처에 있는 다산 정약용 유적지 생가터 안채 전경)
(남양주 팔당 소내포구 근처에 있는 다산 정약용 유적지 생가터 안채 전경)

 

        다산 정약용 유적지 소감

 

                  송 영 기 (宋永起)

 

아늑한 산 고향의  푸른 물결 반짝이는

앞강에 배를 띄워  꿈을 안고 오갔는데

유배지 낯선 먼곳에  정(情)붙인지 또 얼만고

 

돌아와 밤낮으로 목민(牧民) 저술 완성하고

솔바람 불어오는 뒷 동산에 누워 쉬니

그 열정 어디서 왔나 백구(白鷗)에게 물어볼까

 

註 : * 앞강 : 남양주 남한강변 팔당 마재마을 앞 소내 (素內)포구 

      * 유배지 : 40세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가서 사의재,보은산방,이학래의 집, 다산초당에 기거하면서 18년간 유배생활하고 57세에 해배되어 고향집에 돌아와 만년을 보내다가 75세 결혼기념일에  많은 친지들이 모인날 눈을 감다.

      * 백구(白鷗) : 날으는 흰 갈매기

 

(다산 정약용의 집 당호 '여유당' 현판이 걸려있는 사랑채로 선비가 항상 기거하던 남자의 공간)
(다산 정약용의 집 당호 '여유당' 현판이 걸려있는 사랑채로 선비가 항상 기거하던 남자의 공간)

 

 

          남당사(南塘詞) 16수 (일부)

 

        다산 정약용 (혹은 강진의 제자가 지음)

 

1수.   남당포 물가가 바로 저의 집인데,

        어인일로 귀의하여 다산에 머물렀나

        낭군의 사시던곳 알아보려 한다면

        연못가에 여태도 손수 심은 꽃 있다네

 

2수.   남당의 아가씨가 뱃노래 잘 불러서

        밤에 강루 올라가 뱃노래(로) 희롱하네

 

3수.   갈 생각만 하는 님 내 마음 슬퍼지니

        밤마다 심지향 하늘에 닿았겠네 

        어이 알리 온 집안이 환영하던 그 날이

        아가씨 집 운명 외려 기구하게 될 때임을

 

4수.   어린 딸 총명함이 제 아비와 똑 같아서

        아비 찿아 울면서 왜 안오나 묻는구나

        한나라는 소통국도 속량하여 왓다는 데

        무슨 죄로 아이 지금 또 유배로 산단말가

 

7수.   절대의 문장에다 세상 드문 재주시니 

        천금 줘도 한번 만남 오히려 어려우리

        갈가마귀 봉황배필 원래 짝이 아니거니 

        천한 몸 과한 복이 재앙 될 줄 알앗다오

 

9수.   얼굴 화장 떨군 비녀 남이 볼까 겁이 나서 

        웃다가  찡그림을 다만 홀로 안다네

        낭군 마음 그래도 다정함 있다하면 

        반쪽 침상 이따금 꿈에라도 안 올런지 

 

10수.  물막히고 산도 막혀 기러기도 안 오니 

         해 넘도록 관주 편지 받아보질 못했네

         아가씨 이 날에 천만가지 외로움에

         낭군께서 떠나시기 이전의 일만 생각하네

 

13수.  엄자산 햇빛마저 그댈 위해 슬퍼하니 

         늙기전에 서로 만나보지 못함 안타깝다

         해와 달을 묶어둥 재주 설령 없다해도 

         남은 세월 생이별을 차마 어이 견딜려나

 

14수.  외로운 집 사람없이 그림자 안고 자니 

         등불 앞 달빛 아래 옛 인연 이로구나

         서루와 침실이 꿈결에 희미하고

         베겟머리 울던 흔적 그대로 남아있네

 

15수.  남당의 봄 물에 안개가 절로 일고

         물가 버들 강가 꽃이 객선을 덮는구나 

         하늘가 곧장가서 하늘길이 통한다면

         가는 편에 아이 실어 소내(素內)에 닿을 텐데

 

16수.  남당가 노래곡조 여기서 그치리니

         노래곡조 마디마디 절명의 기사일세 

         남당가 곡조를 부르지 않는 데도 

         마음 등진 사람은 등진 마음 알겠지.

    

(다산이 살던 마재마을 집 안채 담장 너머 뒷동산 소나무 숲 정갈한 자리에 정약용과 부인 홍씨의 합장묘가 있다.  기자가 참배하고 돌계단을 내려오는 데  맑은 바람이 건듯 불어 시원하였고, 그 바람이 내게 감흥을 주었다 )
(다산이 살던 마재마을 집 안채 담장 너머 뒷동산 소나무 숲 정갈한 자리에 정약용과 부인 홍씨의 합장묘가 있다. 기자가 참배하고 돌계단을 내려오는 데 맑은 바람이 건듯 불어 시원하였고, 그 바람이 내게 감흥을 주었다 )

 

(註) *출처 : 한양대 정민 교수의 저서 "삶을 바꾼 만남"에서 발췌,한시를 한글로 풀은 것을,아침바다 오직주의 블로그 하늘의 소망에서 발췌함

남당사 16수는 다산 정약용이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귀양지에서 다산의 수발을 든 주막집(사의재) 주모의 외동딸 사이에서 다산이 51세(1813년 8월)때 낳은 딸 홍임 (紅任)인데, 그 소실에서 얻은 딸이 해배될때는 5 ~6세정도 칭얼거릴 나이였고, 두 모녀의 애절한 사연을 잘 아는 강진 제자가 지었다는 설도 있음.

다산은 그곳에 사둔 전답으로 계 모임을 만들어 제자들이 관리 하였다하고 모녀에 대한 소식을 계에 대한 보고차 남양주 마재마을에 올라오는 제자로부터 어느정도 소식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함.

남당사 16수를 누가 지었던 절창이라 할수 있고,그 시대 뛰어난 석학 유학자의 인간사와 고뇌를 엿볼수 있을 것 같아서 더욱 정감이 간다.

다산 정약용 하면 너무 올곧고 허물없는 큰 선비라는 딱딱한 느낌이 들었는데, 남당사 16수 이 시를 읽으며 이제 비로소 사람다운 한 인물의 인간적인 냄새가 났다고 하면 지나친가...

 

(사랑채 여유당  옆에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 거목이 인상적이다)
(사랑채 여유당 옆에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 거목이 인상적이다)
(다산 정약영의 집 마을 앞에 있는 소내포구 전경, 남당사 16수 시중 15수 말미에도 소내 素內라는 포구 지명 이름이 나온다)
(다산 정약영의 집 마을 앞에 있는 소내포구 전경, 남당사 16수 시중 15수 말미에도 소내 素內라는 포구 지명 이름이 나온다)

 

(조심조심하며 산다는 의미의 여유당 與猶堂 당호 글씨를 새긴 비석은 다산의 후손이라는 전 국무총리/ 국회의장이었던 정일권 丁一權씨의 글씨인데, 그 필력이 좋았다)
(조심조심하며 산다는 의미의 여유당 與猶堂 당호 글씨를 새긴 비석은 다산의 후손이라는 전 국무총리/ 국회의장이었던 정일권 丁一權씨의 글씨인데, 그 필력이 좋았다)

 

(다산 정약용의 가계도에 아버지 정재원 丁載遠은 부인이 계속 죽어 힘들었을 텐데, 첫번째 부인이 의령남씨이고 두번째가 다산의 친 어머니 인 해남윤씨이고 세번째부인은 점성 김씨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점성 김씨는 4번째 부인이 되고, 실제로는황씨 부인이 세번째 부인이었지만 소생이 없어 빠진듯하고, 다산 보다 나이 차가 몇살 위 였는데, 계모이나 어머니로써 다산을 많이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가계도에 아버지 정재원 丁載遠은 부인이 계속 죽어 힘들었을 텐데, 첫번째 부인이 의령남씨이고 두번째가 다산의 친 어머니 인 해남윤씨이고 세번째부인은 점성 김씨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점성 김씨는 4번째 부인이 되고, 실제로는황씨 부인이 세번째 부인이었지만 소생이 없어 빠진듯하고, 다산 보다 나이 차가 몇살 위 였는데, 계모이나 어머니로써 다산을 많이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다산을 기리는 박물관에 앉아 찍은 사진에 배가 보이는 강산 풍경은 다산이 유배되어 귀양 살이 하던 전남 강진의 산수화다. 그 강진에서 읊은 전별시가 아래와 같다)
(다산을 기리는 박물관에 앉아 찍은 사진에 배가 보이는 강산 풍경은 다산이 유배되어 귀양 살이 하던 전남 강진의 산수화다. 그 강진에서 읊은 전별시가 아래와 같다)

                         

                          역정(驛亭)에 가을비 소슬하니 님 보내기 서러워 머뭇 거리네

                          멀고도 먼 이 고을 강진 땅 뉘라서 다시금 찿아 주려나

                           ------  중략 ----

                          아직도 유사의 그 일필휘지 뽐내던 일 눈앞에 삼삼한 데

                          어찌 차마 말할수 있으리오, 상감님이 돌아 가신 날을

                         대숲에 내려 앉았던  달빛은 새벽이 되면서 사위어 가고

                         고향의 동산 회고하니 머리숙여 눈물이나 흘릴 뿐이네.    (정약용)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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