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글로벌뉴스통신]
한국 옛 벼루 명품 소장전-이근배 시인 등단 60년 기념
달 (月) *
이 근 배
정조 正祖는 스스로
만천명월주인(萬川明月主人)*이라고
벼루에 새겨서
스승 뇌연(雷淵)*에게 드렸다
어릴적 앞산에 뜨던 달이
내것인가 했더니.
* 만천명월주인 정조의 호
* 뇌연(雷淵) 정조의 스승 남유용(南有容)의 호
* 이근배 시조 시인의 신오우가 新伍友歌 - 벼루 읽기 에서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 - 이근배 시인 등단 60년 기념 한국 옛 벼루 명품 소장전'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타 1층,2층에서 2021.6.16 -6.27까지 12일간 전시되고 있다.
시인으로서 등단 60년을 기념하는 회방연(回傍宴) 성격의 벼루 전시는 지금까지의 생애와 활동을 돌아본다는 뜻으로, 본시 전남 담양 면앙정俛仰亭에서 송순宋純 (1493 -1582)을 위해 과거에 급제한지 예순이 되는해에 송강 정철 등 제자들이 스승을 가마에 태워 축하 잔치를 했었다고 한다.
1973년 6월 창덕궁 명연전(名硯展)에서 한국 옛 벼루를 보고 벼루귀신이 붙어 50년간 1000여점을 수집하는 연벽묵치(硯癖墨痴-벼루 또라이,벼루 바보)로서의는 연벽가(硯癖家-벼루와 먹을 사랑하는 이)가 되어 벼루를 혹애(酷愛)하는 인문학적 고급취미를 가졌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사천 이근배 (沙泉 李根培) 시인은 1940년 충남 당진 출신으로 아버지(李銑濬)는 독립운동을 하였고, 조부(李覺鉉-경주 이씨)는 유학자 인데, 사랑방 문갑위에 놓인 산수문 백자 연적과 남포석 벼루를 매일 보며 어려서 부터 먹을 갈아 먹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니, 그 때부터 벼루를 가까이 하였고, 훗날 시를 쓸수있는 소양을 좋이 길렀다고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는 정조대왕이 왕세손일때 건륭황제 11황자가 선물한 중국 단계석 (端溪石) 벼루를 아버지 사도세자와 정조 자신의 사부인 대제학 남유용 (南有容)에게 하사했다는 정조대왕 사은연 (正祖大王謝恩硯)외에, 크게 위원연(渭原硯 -평안북도 위원군 강돌, 현재 자강도)과 충남 보령 남포석(藍浦石) 돌로 만든 벼루 100여점이다.
위원화초석(渭原花草石)은 위원강물이 압록강으로 들기전 10리정도 바닥에서 갈수기에 채석하는데 적층을 이룬 돌색깔이 녹두색과 팥색으로서 녹두색은 풀로 보고 붉은 팥색은 꽃으로 봐서 화초석이라 하며, 보령 남포석은 성주산에서 주로 채석하며, 이 벼루돌은 다산 정약용이 으뜸으로 쳤다고 한다.
특히 이근배 시인이 소장한 위원화초석장생문일월연 (渭原花草石長生紋 日月硯)은 조선초 태조 이성계나 태종 이방원이 공신들에게 내린 벼루로 그만큼 조각솜씨가 뛰어난 이름난 벼루들인데, 임진왜란 이후로는 더이상 않았다 한다. 그 이유는 위원석도 수거해갔고 석공(石工)마져 잡아갔기 때문이란다.
전시품 중에는 고종황제의 후궁인 엄비 (영친왕 친모)와 의친왕 이강 공이 쓰던 궁가(宮家)의 화려한 벼루와 벼루함도 감상할수 있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영주 다이묘(大名)가 소장했던 우리의 벼루도 볼수 있다.
서예가 김양동 (金洋東)은 " 빼어난 미석美石에 정교한 수법의 조각이 아름답게 장식된 벼루는 그 시대의 인문학적 품위와 미학적 이상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당송唐宋 이래 애연愛硯 사상은 문사들의 고급취미로서 한묵계翰墨界의 유행이 되어 갔다 --신연神硯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벼루가 위원화초석일월연이다.
신의 솜씨로 조각한 포도,매화,송죽,일월의 섬세,정밀,화려함의 극치가 동공瞳孔을 뒤집어 놓는다. 몸속에서 천고天鼓의 하늘 북소리가 맞이 한다."고 했다.
돌 (石)
이 근 배
어느 것 신(神)의 손이
빚지 않은 것 있을까마는
그 위에 으뜸 명장(名匠)이
깍고 새긴 돌벼루가
꿈속에 들어와서는
먹을 갈라 보채이고.
중국이나 전국 골동가계를 다니며 명품 벼루를 보면 남이 사가지고 갈까 밤잠을 설쳤으며, 당시 집 한채가 230만원할 때 100만원을 주고 벼루를 산적도 있고, 이중섭 그림이 30만원 이었으며, 공무원 월급이 3 - 4 만원 일때라고 한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미학 재발견 : 위원, 남포석 벼루'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했는데, 1층과 2층에 전시된 신연(神硯)이요 명연(名硯)이라 감탄 할수 밖에 없는 한국 옛 벼루 진장품(珍藏品)에 대한 평가요 찬사라는데 공감한다.
" 발견도 어렵지만 못지 않다. 대뜸 말하지만 한국미학은 재발견,재평가 역정의 곡절을 거쳤던 장르가 적지 않았다.
이번 위원석과 남포석 벼루 전시회 또한 한국미학 재발견과의 추가 장르로 기록될 만하다.
그러고 보니 1960년대에 우리 민화 (民畵)에 빠졌던품 조자용 (1926 - 2000)이 수집품을 국내외에서 전시하기 시작하자 혜곡 최순우(1916 -84)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했던 좋은 말이 생각난다.
" (나라) 박물관이 못하는 것을 한 구안(具眼)이 좋은 일했다." 취지의 찬사다.
그런 당신이 살아서 사천(沙泉) 벼루 수집품을 보았다면 역시 " 나라가 해야 할일을 해 주었다 ! "고 고마워 했을 것이었다.
추사秋史를 훔치다
이 근 배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추사秋史의 벼루를 보았다
댓잎인가 고사리 잎인가
화석무늬가 들어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남포 오석
돋보기로 들여다 보아야
- 다듬고 갈아 군자의 보배로다
(琢而磨只 君子寶只) 등
깨알 같은 48자 명문銘文이 새겨있는
추사가 먹을 갈아 시문을 짓고
행예行隸를 쓰던 유품이 아니라면
한 눈에 들어 올것이 없는
그 돌덩이가 내 눈을 얼리고
내 숨을 멎게 한다
어느새 나는 쇠망치로도 깨지 못할
유리장을 부수고 벼루를 슬쩍 ?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못나게도 내 안의 도둑은 오금이 저린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 게 섯거라 !
그 작고 검은 돌덩이가 와락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