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각 옹, "세월호 보다 더 큰보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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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각 옹, "세월호 보다 더 큰보상해야"
  • 권혁중 기자
  • 승인 2021.05.18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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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참군인의 표상 정봉욱 장군'(저자 남인우)이 2021년 5월 진영문화사에서 비매품으로 출간되었다. 

남인우 저자는 1947년 10월 10일생으로 육군3사관학교1기생으로 1993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했다.

남인우 저자는 발간사에서 "정봉욱 장군은 육군3사관학교 창설초대 교장을 지내면서 우리들에게 훌륭한 간성이 되어주길 당부하던 기억이 선하다. 강골, 원칙, 청렴결백, 불통의 대명사처럼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힘주어 자랑하고 싶은 존재 였다.정봉욱은 1924년 11월 28일생으로 황해도 안악군 안곡면 학포리2번지에서 출생하여 1950년 낙동강 방어선 전투(1950.8.1-9.14/45일간)에서 인민군 포병연대장 중좌로 1950년 8월 22일 김유각 옹(당시 20세 상병/1930년 6월 6일생. 음력)을 동행하여 귀순했다.정봉욱은 그 공로가 인정되어 특수임관(특임) 장교로 한국군 중령계급을 부여받아서 국군에 복무하게 되었고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2018년3월9일 95세일기로 별세하여 대전현충원 묘역에 안장되었다. "라고 밝혔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DB)김유각 옹(현재92세)
(사진:글로벌뉴스통신DB)김유각 옹(현재92세)

김유각 옹은 한국군에 재입대하여 상사로 전역하여 남한에서 재혼[박정희 장군(前 대통령)이 주례]한 부인(2020년 작고)과 사별하고 전남 장성에서 홀로 산다.현재는 요양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6.25 참전 수당 외에 국가에서 훈장도 못받아 국가유공자 지위와 명예를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국가기록원에서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625전쟁사'에 정봉욱이 적 13사단 포병연대장(인민군 중좌)으로 다부동 전투에서 1950. 8. 22. 10:00시 사병 1명을 대동하고 귀순하여, 전세를 역전시킬수 있었다는 실록기록을 알수 있다.

한편,한민구 국방부장관(2014.06.~2017.07.제44대 국방부 장관)은 김유각 옹을 국회에서 면담하면서 "정봉욱 장군에게 인우보증서를 받아서 국방부에 제출하면 소정의 절차를 밟아서 훈장 등의 심사를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후에 김유각 옹은 정봉욱 장군의 딸(모 대학교수)의 도움으로 정봉욱 장군이 생전에 인우보증서를 발급하게 하고 그 서류는 국방부에 제출되었다.

제371회 정기감사 국회정무위원회(위원장 민병두)는 2019년 10월10일(목)오전10시 정부세종청사 2동에서 김성원 의원(동두천시,연천군)이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에게 "김유각 옹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라."고 민원제기된 사항을 요청하였다.(글로벌뉴스통신 2019.10.3.기사.김유각," 대한민국을 살리고 훈장과 포상 못받았다.")

1950년 625사변때 국가의 운명이 적화통일 되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던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는데 크게 기여했던 김유각,고 정봉욱 장군의 공로가 지금에 와서 홀대를 받게 되면 안된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수학여행단들은 해상 사고로 인하여 정부로부터 많은 금액을 보상 받았다.

김유각 옹(92세),고 정봉욱 장군의 공로는 세월호 사망사고보다 더 큰 예우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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