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글로벌뉴스통신] 생각해보니 현대인 아니 오늘의 아버지들은 정말 슬프더라. 그들이 불쌍한 것은 그저 맘 놓고 울만한 곳이 없어서 더 그러하다. 누구는 포장마차 간이의자에서, 누구는 노래방에 혼자 볼륨을 최고로 높여놓고 나훈아가 부른 “남자의 인생” 곡을 목 째지게 부르며 흘린 눈물, 연암 박지원 선생도 열하일기에서 도강록 한 대목~압록강 건너 지금 만주 넓은 벌판에 당도하여 아! 여기가 울만한 곳(好哭場 可以哭矣)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나의 별명은 유효하다.
일전에 같은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동료였던 선배 한분이 소천 했다. 그분은 예절도 있고 검약한 생활을 하지만 퇴근 후 막걸리 한잔 하시고 기분이 좋으실 때 늘 “피리를 불러주마 울지 마라 아가야”로 시작 되는 옛 노래 “아주까리 등불”이란 곡을 줄 창 불렀는데 그분 가신날 나는 꽃 한 송이와 향 한 개 그리고 눈물 한 방울 올리지 못했다. 고놈의 코로나 때문에---. 하나 뿐인 외손녀를 맞벌이 사정상 우리 내외가 버겁게 키울 때 맨 아래층 어린이집 유아 방에 내가 그 작은 것 안고 들어설 아침마다 고것이 안 떨어지려고 자지려지게 발버둥 치며 “하뿌지 하뿌지” 큰소리로 울 때 그 몇 년은 내가 속가슴 적시며 “매일 이별하고 사는 사람”이 되기도 했었지요~~.
내가 울기위해 옛날에는 자주, 지금은 가끔 찾는 곳은 동작동 현충원 비석거리나 한강 잠수교 근처 둔치, 아니면 멀리 동해 주문진 웃편 아들바위 전설이 있는 “소돌공원”. 거기 돌로 된 무직 박스에 5백원 동전 한 개 던져 놓으면 언제나 배호의 “파도”가 삼절까지 애절히 흘러나온다. 그렇때 마다 나는 방파제위에서 먼 바다 향해 손나발 만들어 그리운 이들 이름을 부르며 울어본다. 나이 들어 눈물이 많다던 안과의사 말이 맞은 것 같더라. 그 눈물샘과 코 구멍 안으로 연결된 누선이 노쇄의 정도에 따라서 막혀서 안구 밖으로 넘쳐 나서 그렇단다.
흔히 사랑하기에 헤어지고 사랑하기에 결혼하고 사랑하기에 죽고 죽이고, 아! 이 얼마나 모순인가. <사랑>이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이지만, 가장 낭비하는 단어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 했던가? 한참 울다가 엉뚱한 생각났다. 그럼 신(神God)은 눈물 흘릴 때가 있을까?. 오래된 것은 모두 神 이라고 했지(古卽神也)--. 양평 용문사 앞 1천년 이상 묵은 은행나무가 국가의 변괴가 있을 적에는 꼭 울었다는 전설이 있으니 노거수도 울고 신도 울지 않았을까?
<신의 눈물>도 분명 있단다. 그리스 카오스 섬에 자라는 매스틱이란 나무에서 추출한 송진 비슷한 끈적거리는 분비물 이르는 말인데, 이 나무줄기 표면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수지로 그 모습이 흰색의 눈물 모양이 되는 데 이게 위장이나 장수에 특효여서 이름이 “신의 눈물”이란다. 2021년, 눈물 없는 한해 눈물 덜 흘리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넘쳐 흐르거나 안으로 조용히 흐르더라도 다소곳이 닥아 주는 이웃 손이 되자, 그러나 함부로 ‘아무 것으로 닦지는 말아야 한다.그 속에 사랑과 희망이 싹트고 있을지 모르니까?. 아 내 눈물타령은 여기서 마감을--. 사랑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