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동 창령위 재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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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동 창령위 재사 유감
  • 송영기 기자
  • 승인 2020.09.28 0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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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는 창령위 재사 전경)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는 창령위 재사 전경)

 

 

     번동 창령위 재사 유감(有感)

                        송 영 기

 

벽오산  동산아래  격조높은 궁실재사 

사춘기 신혼 마마  부귀두고 일찍가니

금베개 품고잔 부마 홀로살며 쓸쓸했네

 

삼간택 통과했던  그 운명이 남 달라서

궁에서 곱게자란  금지옥엽  짝이되니

짧은생 한이불아래 마음주던 상전일까

 

송현동 창령위궁  높은대의 주인인데

명부에 적힌수명  부질없는 봄꿈인가

도성밖 동북먼곳의 푸른숲에 잠들었네

 

              (都雲 宋永起, 서울)

 

(왼쪽이 재사가 딸린 안채, 오른쪽이 사랑채)
(왼쪽이 재사가 딸린 안채, 오른쪽이 사랑채)

 

(註) * 복온공주( 福溫公主 1818 -1832) :

순조임금의 둘째딸 (哀壽15세) 순조30년

(1830) 12세 길일에 혼인, 15세에 졸함

 

* 창령위 김병주(昌寧衛 金炳疇 1819-1853) :

순조의 부마(駙馬, 享年35세)로 공주가 결혼

2년만에 죽자 재혼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다

철종4년 35세에 졸하였다.

 

(길다란 2단 장대석위에 높이 지은 집 방문을 열면 마당에 선 사람을 앉아서도 편하게 굽어 볼수  있고, 습기에도 좋을뿐만 아니라 쾌적한 공간이 된다)
(길다란 2단 장대석위에 높이 지은 집 방문을 열면 마당에 선 사람을 앉아서도 편하게 굽어 볼수 있고, 습기에도 좋을뿐만 아니라 쾌적한 공간이 된다)

 

* 복온공주와 효정공 김병주 슬하에 무후하여

양자를 두었고, 손자 김석진(金奭鎭 1843-1910)

은 경복궁 왼쪽(동편)의소나무 우거진 넓은 송현

(松峴)벽동(礕洞)에 있던 창녕위궁을 매각하고,

1905년 가족을 대리고 번동재사로 이사와서

살았다.

 

(사랑채쪽에서 바라본 왼쪽담장에 솟을대문채, 마당앞은 대문)
(사랑채쪽에서 바라본 왼쪽담장에 솟을대문채, 마당앞은 대문)

 

* 재실 뒷산에 있던 덕온공주와 창령위 묘는

경기도 용인시 죽룡리로 이장하였다.

 

(안채 재사청 공간뒤에는 큰 참나무가 높이 자라있다)
(안채 재사청 공간뒤에는 큰 참나무가 높이 자라있다)
(대문앞 담장 근처에 오래된 향나무 고목이 아름답다)
(대문앞 담장 근처에 오래된 향나무 고목이 아름답다)

 

(철종왕비 철인왕후가 손자 김석진에게 써준 벽오산 글씨가 산이름이 되고,그 동산아래 있는 재실의 원경)
(철종왕비 철인왕후가 손자 김석진에게 써준 벽오산 글씨가 산이름이 되고,그 동산아래 있는 재실의 원경)
(재실청과 안채와는 달리 바깥 주인 양반의 거주공간인 사랑채는 기둥마다 아름다운 시를쓴 주련이 걸려 운치를 더 한다. 一輪晧月心中照  둥글고 밝은 달 하나가 온 천하를 환하게 비추네)
(재실청과 안채와는 달리 바깥 주인 양반의 거주공간인 사랑채는 기둥마다 아름다운 시를쓴 주련이 걸려 운치를 더 한다. 一輪晧月心中照 둥글고 밝은 달 하나가 온 천하를 환하게 비추네)
(서쪽딤장너머 길에 서늘한 대숲길이 운치있다)
(서쪽딤장너머 길에 서늘한 대숲길이 운치있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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