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전화 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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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전화 할 수 있다는 것
  • 박은비 기자
  • 승인 2020.01.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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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되기 보다 함께 어울리고 시잘 때기 없는 이야기라고 자주 하자
(사진:글로벌뉴스통신 DB) 주성 박형태.수평선문학, 문수필담, 청옥문학회원, 정훈평생교육원 원장

[울산=글로벌뉴스통신]답답할 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구에게 전화 한 통 할 곳 없고, 누군가로부터 전화 한 통 안 오면 그 것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어제 “나는 자연이이다” 란 프로에서 강원도 산골에 사는 한 도사는 처음 산골에 들어와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사람이 그리운 것” 이라고 했다.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어 멀리서 사람소리가 나면 나무꼭대기 올라가기도 했고, 산꼭대기 까지 달려가서라도 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일할 때 만나고, 전화 할 때가 있고, 만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나서 지지고 볶고, 잘 했니 못했니? 그럴 수 있니 없니? 아옹다옹 하는 것은 자주 만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니 그 것은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잘난 놈들이 너무 많고 많아 그 만남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음은 누구나 느낀다. 특히나 50살이 넘으면 어렵기 시작하고 60살 위 아래 깔고 보면 더더구나 갑갑하다. 나이 들면서 지갑 풀지 않고 밥 한 끼 사지 못하면 더 어렵기 마련이다.

늘그막이 새로운 만남을 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기도 하다. 일도 그렇고, 모임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현실이 되어 버림은 인정하고 수용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속한 S문학회 K 시인님이 계신다. 영천이 고향이라 꽃다지처럼 깔끔하다. 누구에게 신세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고, 남의 면전에서 고함 한 번 치지 않고 버티는 그다. 자신의 속 내음을 글로서 시(時) 로서 표현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족들과 된장찌게 끓여 반주 한잔에 행복을 느끼고, 벚꽃 향연을 즐기며 금오강변 고수부지를 걷고, 지천에 널린 은행잎을 뒤에 지고 보현댐에서 강태공을 즐기는 그다. 하루가 멀다않고 연락하는 5명 동네 문우들을 만나 노닥이고, 한 달에 한두 번 문학모임에 가서 그냥 듣고만 오는 분이다.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지만 만나는 지인들 하나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당신이 먼저 밥값 내고, 사위 딸에게 용돈 얻어 기분 좋게 문학회에 기부하고 싶은 여린 마음이다.

건강이 좋지 않다 보니 경제활동도 변변찮다. 아무리 천석꾼인들 수년 간 경제활동 하지 않으면 수축되기 마련인데 병원에서 요양할 정도면 더 한층 주눅 들기 마련이다. 지난 해 울산시의회 의장에 취임한 초등학교 동기를 50년 만에 주선하여 만나는 광경은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그이가 건강이 좋지 않자 차츰 내자(內子)도 지쳐 가는 모양이다. 그럴수록 고립되고, 전화도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집사람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니 둘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음은 충분히 감지가 된다. 주변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도 한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인적 네트워크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부쩍 주변을 멀리 하는 듯하다.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니 더도 그럴 것이지만 외부의 적보다 자기마음의 적이 더 두려운 것처럼 느껴진다.

젊은 피보다 누나들을 좋아한다. 동래학춤 전수 누나, 경산문학 선배 누나, 아람카라 문인 선배의 품이 편안하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해 주니 당기는 모양이다. 밥 사고 차비 챙겨주는 것이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한다.

주변에 사람이 있고 달려가 소주한 잔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립에서 벗어나게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전화 할 수 있는 곳이 있고, 전화 오면 반갑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다. 전화 내용이 영양가 하나 없어도, 주변의 쓸데없는 사연일 지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하나 둘 쯤 있음은 천 만 다행이다.

문학회에서 그이와 안지 햇수로는 제법 되지만 건강상 이유 등으로 연락이 잘 안되다가 최근 2년 정도 친하게 전화하고 지낸다. 나의 전화를 반갑게 받고 목소리가 활기 찰 때는 내가 기분이 좋다. 가급적 이야기를 들어 주고 더 많이 토해 내도록 유도할 때가 많다. 살아 온 날 보다 살아가볼 날이 더 적은 우리가 아니던가? 더 고립되지 않고 더 위축되지 않고 더 당당하게 살다가 가야지 않을까? 지금도 나는 그 형에게 전화하고 카톡을 날리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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