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삼랑진이 깨어난다

-삼랑진, 역사 문화 관광지로 부상-

2015-09-07     윤채영 기자
   
▲ [사진:밀양시] 삼랑진이 깨어난다-낙동나루 벽화

[경남=글로벌뉴스통신] 삼랑진이 오랜 침체를 벗어나고 있다. 교통의 요충 역할을 하던 황금시절의 삼랑진이 긴 잠에서 깨어나듯 밀양 삼랑진에 사람이 모이고 있다.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가 생기면서 젊은이들이 모이고 주말 별장식 전원주택이 각광을 받고 있다. 삼랑진읍 행곡리 안촌마을, 우곡리 염동마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원주택이 산 기슭에 들어서고 있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지형이 전원택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인 듯 하다.

삼랑진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고장이다. 삼랑진이 새로운 역사, 문화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삼랑진(三浪津)은 강과 길과 산이 모두 세 갈래다.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니 삼수가 되고 경부선과 경전선이 갈라지는 곳이며 천태산, 금오산, 만어산 자락이 감싸는 삼랑 들판이다. 나라의 관로인 영남대로가 이런 요충지를 지나는 것은 필연이다.

하지만 도로가 철로를 앞지르면서 삼랑진은 한동안 쇠락의 길을 걸었으나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가 열리면서 다시 길의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조선후기 영남대로 밀양 삼랑진 천태산 자락 낙동강변에 작원관이 있었다. 작원관은 원(院)ㆍ관(關)ㆍ진(津)의 역할을 담당하던 영남대로의 첫번째 관문이었다. 경북 문경의 조령관과 함께 동래에서 한양을 잇는 교통상, 국방상 2대 관문 중의 하나였다. 천태산과 낙동강 이라는 천연 요새를 지나는 길목이어서 이곳만 막으면 누구도 육지로는 통행이 불가능했다.

   
▲ [사진:밀양시] 삼랑진이 깨어난다-전원주택(염동마을)

작원관은 신라군이 가야를 치기위해 나아갔던 요로였고 임진왜란 때는 조선 관민 300여 명이 왜적 1만 8천 명을 상대로 결사항전을 벌인 격전지기도 하다. 영남대로가 양산시 원동면 중리마을을 지나 북상하려면 낙동강과 산이 딱 붙어서 걸을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진다. 일제가 경부선 철도 공사를 벌일 때 이 구간은 철도마저 놓을 수 없는 공간이어서 터널을 뚫었다.

그 덕분에 영남대로의 벼룻길인 작원잔도(鵲院棧道) 일부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남아있는 작원잔도 구간은 볼수록 신비롭다. 까마득한 절벽에 걸린 외줄기 길과 그 길을 떠받힌 석축,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천태산ㆍㆍㆍ.

삼랑진에는 ‘처자교’에 얽힌 전설이 있다. 삼랑진의 작은 절에 중이 살았는데 동네의 아리따운 처자(처녀)와 사랑에 빠졌다. 두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걸고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다리 놓기 시합을 벌였다. 중은 행곡천, 처자는 우곡천의 다리를 맡았고 처자가 먼저 다리를 완성했다. 중은 자신의 교만과 게으름을 탓하며 서둘러 다리를 짓고는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은 강가의 이 돌다리를 ‘처자교’와 ‘승교(중다리)’라 불러왔다. 삼랑진읍 검세리의 우곡천 하류에 놓인 조선후기의 홍예교이다. 동래와 한양 사이에 건설된 영남대로에 놓였던 홍예교로 폭 4.5m, 길이 26m 이다. 1642년에 건립되어 1960년 대까지 원형을 유지했으나 그 후 물길이 바뀌고 주변이 농경지로 바뀌면서 강변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었다. 영남대로 상에 놓인 아름다운 홍예교라는 점에 큰 가치가 있다.

삼랑진에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삼랑진을 눈여겨보고 이곳에 공을 들였다. 일본인들이 살기 위해 관사를 지었고 이 목조 건물들은 아직도 일부 남아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옛 목조 건물들은 영화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삼랑진역에는 기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급수탑(2003년 문화재청 등록 문화재 제51호)이 있다. 방문객들은 급수탑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많이 하고 있다. 삼랑진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삼랑진 읍내 어디에서도 잘 보인다.

삼랑진에는 인공호수가 2개 있다. 삼랑진양수발전소가 발전을 위해 건설한 호수이다. 하부의 호숫물을 상부호수로 끌어올려 물을 떨어뜨려 그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독특한 방식의 우리나라 최대의 양수발전소이다.

발전소 건설과 함께 조성된 호수 둘레길은 트레킹코스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봄에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벚꽃길로 명성이 자자하고 딸기축제가 매년 열리며 가을에는 단풍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또 겨울에는 호수에 철새들이 찾아와 장관을 연출한다. 호수를 한바퀴 돌고나서 상부댐으로 올라가면 ‘꿈바위’로 불리는 전망좋은 바위가 나타난다. 주변에 펼쳐지는 산들의 파노라마가 환상적이다.       
 
삼랑진에는 다리가 많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대교가 무려 5개나 된다. 낙동강 종주 자전거 도로가 개설 되면서 삼랑진을 찾는 방문객이 부쩍 늘었다. 자전거 마니아들은 삼랑진 주변 자전거 길이 낙동강 종주 코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입을 모은다. 잠시 삼랑진에서 페달을 멈추고 밀양돼지국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즐거움을 칭찬한다. 강을 가로지르는 5개의 다리 위의 저녁노을은 삼랑진을 다시 찾게 하는 잊을 수 없는 대표적인 풍광이다.

삼랑진에는 나루도 성했다. 삼랑, 조창, 뒷기미, 작원나루 등은 삼랑진의 수운시대를 대변한다. 이런 나루들이 한 때는 번성했으나 지금은 옛 영화를 묻어둔 채 위치만 알려질 뿐 흔적은 사라졌다. 소설가 김정한은 ‘뒷기미나루’라는 소설을 우리에게 남겼는데 이곳 정취를 소설로서 잘 표현하고 있어 더욱 친숙하다. 나루가 있었던 하부마을에 삼랑진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멋진 벽화 조형물이 건설돼 있는데 이런 싯귀가 나루의 애환을 예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