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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지화 4대를 잇다.민간지화와 관련한 무형문화재 지정이 매우 필요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혁중)좌측 김선영(딸,이학박사),전흥자(엄마,농학박사)

[포천=글로벌뉴스통신]

전흥자(농학박사), 김선영(이학박사)모녀.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닥종이 갤러리

강원도 한국을 디자인하다.

전통지화 4대를 잇다.

전흥자 박사를 지난 2017년11월8일(수) 오후 만나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혁중)좌측 김선영(딸,이학박사),전흥자(엄마,농학박사)

반갑습니다.

 

1. 전통지화에 대한 내력을 말씀해 주세요.

 

우리 전통지화는 한지 꽃으로 한지에 천연염색을 하여 꽃을 일구는 것을(일군다:꽃을 만들다) 말합니다. 지화에는 크게 궁중지화, 불교지화, 무속지화, 그리고 민간지화가 있는데 그중에 우리는 민간 지화를 근간으로 꽃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강원도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강원도에서는 잔칫상에 음식을 올릴 때 층을 쌓아 올리고 상단부분을 꽃으로 장식합니다. 혼례의 경우에는 상의 양옆도 지화로 장식을 하는데 혼례가 끝난 후에는 상에 장식해 두었던 꽃을 버리거나 나누어 주지 않고 신랑 신부의 방에 장식을 해서 첫날밤을 꽃 속에서 치룰 수 있도록 아름답게 꾸밉니다. 환갑잔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상을 꽃으로 장식하고 참여한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고 갈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상례 때에는 상여를 전부 흰 꽃으로 장식하여 행상을 만들어 줍니다. 오늘날 울긋불긋한 꽃으로 장식한 행상이 많이 있는데 이것은 잘 못된 것이며 친정 어머니(김희영)의 말씀에도 상여는 흰색으로 한다고 하셨고 제 딸이 쓴 논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저희 증조모인 설정림 할머니는 동네잔치가 있을 때마다 잔치를 도맡아 하셨는데 지금으로 보면 행사총책임자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아낙내들에게 잔치음식이나 옷 만드는 일, 특히 꽃을 만들어 장식하는 모든 것들을 관장하셨죠. 모친께서는 맏딸로 그 모든 것들을 배우셨고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북분리(우리 마을)로 시집을 오셔서도 동네잔치를 할 때 마다 꽃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동네사람들에게 지화를 만드는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화가 워낙 비싸기도 했고 귀했기 때문에 잔칫날 생화를 쓴 기억은 거의 없어요. 특히 겨울에는 꽃으로 장식한다기 보다는 대나무와 소나무를 사용하기도 했지요.

 

(사진제공:김선영)좌측부터 김선영(이학박사), 故 김희영 , 전흥자(농학박사)

4대는 설정림-김희영-전흥자-김선영 이다. 2015년 3대가 함께 전시회를 갖음

 

2. 나의 철학은?

어려서 부터 엄마가 천연염색을 많이 하셨는데 막내딸(7남매에서 6번째)로 자랐어요. 그렇게 형제들이 많은데도 저만 엄마 옆에서 염색을 하고 지화 만드는 일을 했어요. 어릴 때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종이꽃을 참 많이 만들었어요. 양양여고를 졸업하고 영화진흥공사에서 1976년경 근무를 시작하였는데 그곳에서 비서들끼리 꽃꽂이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아마도 공식적으로 첫 시작이었던 같아요. 1996년도에는 (사)고려닥종이공예협회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법인은 구의동에 있습니다.

 

(사진제공:김선영)故김희영

3. 따님은 언제 부터 하게 되었나요?

아무래도 엄마가 계속 하시다 보니 저는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어요. 중학교는 선화예술중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다녔는데 졸업 후 1997년도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인테리어디자인전공)를 다니고 미국으로 가서 대학(New York Shcool of Interior Design)과 대학원(Pratt Institute)에서 인테리어디자인을 전공하였고, 2009년경 귀국했습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어요. 외국생활을 많이 해서 한국의 전통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들을 하시는데 저는 꾸준히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재 및 미술에 대해 공부를 하였고 디자인에도 많이 반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 때 한옥관련 논문을 쓰기도 했구요.

 

 

(사진제공:김선영)故김희영

4. 전시회를 많이 하였군요.

1992년부터 전시회를 했는데 1994년도에 중학교1학년이었던 딸과 함께 모녀가 서울 가락동에서 전시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벤쿠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덴마크에서도 전시회를 한바 있어요.

 

5. 특히 남는 기억이 있나요?

2015년 3대가 KBS 춘천총국에서 개최한 민간지화 전시회입니다. 생에 처음으로 3대가 한 전시라 매우 뜻 깊었습니다.

 

(사진제공:김선영)故김희영

6. 지화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지는 면이나 모시와 같이 식물성 섬유 즉, 셀룰로오스 섬유이기 때문에 염색이 잘되지 않는 특성이 있습니다. 특히 한지 염색은 섬유에 비해 더더욱 힘들죠. 일반인들은 쉽게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색이 잘 되지 않아서 원하는 색상이 나오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죠. 그래서 더 깊이 공부를 해보고자 박사 공부를 하게 되었구요. 꽃을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염색하는게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죠.

 

7. 보람된 일이 언제였나요?

(전흥자) 꽃을 일구어서 꽃송이가 탄생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김선영) 저는 꽃을 통해서 엄마와 소통하고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좋구요. 아마도 그런 시간을 통해서 같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니까요.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혁중)좌측 김선영(딸,이학박사),전흥자(엄마,농학박사)

8. 앞으로 계획이 어떤가요?

민간 전통지화가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져 갔으면 합니다.

전통지화를 사랑하는 마음의 꽃이 한국문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나아가 꽃접기가 전세계에 알려졌으면 합니다. 지화는 손으로 하는 작업이나 보니 아동의 두뇌발달과 창의력 그리고 성인의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지화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꽃과 관련된 무형문화재는 궁중채화를 비롯해 불교지화, 무속지화가 있지만 우리나라 전역에서 했었던 민간지화를 만드는 무형문화재는 현재 지정된 바가 없습니다. 

민간에서 하다 보니 실생활에서 잊혀져 갔기 때문에 전승된 바가 거의 없고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죠. 그렇기 때문에 4대를 아울러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민간지화와 관련한 무형문화재 지정이 매우 필요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죠.

 

권혁중 기자  andong-kw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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