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1절을 맞이하며
상태바
2015년 3.1절을 맞이하며
  • 오영숙 논설 위원
  • 승인 2015.03.05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글로벌뉴스통신]2015년 3.1절을 맞이하며- 오영숙 논설위원장(前 세종대학교 총장,영문학 박사)

3.1 운동은 일제무단 정치에 반하여 1919년 기미년 3월1일에 일어난 독립운동으로, 올해가 96주년이 되며 대한민국이 광복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임진왜란 후에도 일본의 잦은 침범과 약탈을 의병의 봉기로 극복하였고, 국교가 단절되었으나 그들의 간교한 요구로 우리문화가 오히려 일본에 전파되었다.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친러파의 대두로 일본은 한국을 독점하기 위해 을미사변, 명성황후 살해, 일방적인 을사조약으로 헤이그 이준 열사가 순국했고, 일본은 우리나라에 무력으로 일본정부를 세워 무자비한 탄합과 민족정신말살 정책을 펴고, 약탈과 식민지 정책 등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은 해외로 망명했다.

1909년 안중근 열사의 이토히로부미 저격사건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민족적 분개였고, 일제 무단정치에 항거하여 1910년 2월8일 도쿄 독립선언 이후 3 월 1일부터 2개월간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200만명이, 전국으로 이어진 만세운동으로 우리 민족의 뜻을 세계 만방에 과시했으며, 이 운동은 만주, 연해주, 하와이 등 해외로 확산되었다.

그때 유관순은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 선창과 격렬한 독립운동으로 일본 헌병에 끌려갔고 부모는 총살당했으며, 주모자로 몰리어 옥중에서 고된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불복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제침략을 규탄 항거하다가 1920년 1월 12일 아침 병든 몸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다 17세로 세상을 떠났다.

3.1운동 이후 해외에서 영향을 받아 애국지자들은 단체를 만들어 독립군 교육을 시켜 김좌진, 이청전, 이범석 등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3,000명을 전멸하는 승리를, 홍범도는 1910년 간도에서 독립군을 양성 봉오동 전투에서 500명의 일본군을 살상 승리했다. 그후 망명정부인 임시정부를 탄생시켜 광복군창설, 1941년에는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민족압박과 말살정책과 함께 창씨개명, 청년징병, 공출, 20만여성정신대 성노예, 순종장례식운동, 학생 광주학생운동, 신간회 설립으로 이민정책 철폐, 일제협력배격운동, 1943년 카이로 선언, 한국독립약속 포스탐 재확인 된 후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의 원자폭탄투하로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정신대문제, 동해표기 문제, 독도 문제가 남아있다.

역사는 거짓이 없다. 우리민족혼 삼일정신은 살아있다. 독도는 460만년전 해저융암 분출로 생성되었으며, 신라 지증왕 512년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로 신라에 병합된 대한민국 땅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3.1정신을 되새기며 우리의 영토를 탐내는 일본의 일방적인 수법에 말려들지 말고, 굳건한 정신 무장을 하여 우리 영토를 지키며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물려줘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