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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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NA)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5)
  • 김태진 기자
  • 승인 2023.04.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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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문학평론가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 ‘뜰 앞의 잣나무’

 

「깔깔대며 웃는다」,

- 학랑소(謔浪笑, 실없는 말로 희롱질하며 비웃네)

 

“나는 알지, 나는 알지 我會也 我會也(아회야 아회야)

손뼉 치며 깔깔 한바탕 웃노라. 拍手呵呵笑一場(박수가가 소일장)

옛날 잘난 이 모두 양(羊:본질‧생명)을 잃었나니 古今賢達俱亡羊(고금현달 구망양)

맑은 시내 가까이 띳집 짓느니만 못하네. 不如結茅淸溪傍(부여결모 청계방)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매월당시집 1권],시 술회(述懷) 중에서

(사진: 김태진 제공 인문학 기록사진) 설잠 김시습의 거처, 무량사 경내
(사진: 김태진 제공 인문학 기록사진) 설잠 김시습의 거처, 무량사 경내

김시습의 본관은 명주 내지 창해라 불리던 강릉이다. 아버지는 일성(日省)이고 어머니는 선사 장씨였다. 조선초기인 세종 17년(1435년)에 서울 명륜동 성균관의 북편 반궁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성균관인근에 살며 유학 본류의 학구적 분위기속에서 성장했다. ‘때때로 학문을 (배워)익힌다.’는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이웃에 살던 최치운(崔致雲)인데 세종 때 예문관 제학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낸 학자였다. 공자 ‘학이(學而)’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란 데서 유래한다. 익히 그의 천재성을 꿰뚫은 안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듯 매월당은 천자문을 배워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을 깨치고, 2세에 당시(唐詩)와 송시(宋詩)를 익혀 3세 때는 시를 직접 지었다. 5세에 <중용>, <대학>을 섭렵한 신동으로 알려졌다. 세종후기 집현전학사들의 스승이던 조수(趙須)로부터 시문을 배워 ‘열경(悅卿)’이라는 자(字)를 받았다. 훗날 세종은 소문을 듣고 승정원을 통하여 그를 시험하곤 “장차 조정에 큰일을 할 인물이니, 잘 키워라!”고 했다던 이야기는 아직도 세간에 회자된다.

하지만 그의 전설 같은 명성에 비해 그리 살지 못했다. 1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8세에 송광사 준상인(峻上人)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서울로 와 남씨 부인과 결혼하고,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한다. 이후 21세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중 세조의 모반에 이은 단종의 폐위 소식을 듣고 출가, 설악산 오세암에 은거하며 설잠(雪岑)스님으로 살았다. 효령대군 및 학열, 학조 등의 스님과 교유가 깊어 <법화경> 등의 역경에 동참, 한때 불문에 깊이 침잠하였다. 47~49세 무렵에 잠시 환속 후 다시 출가하여 관동지방을 유람하고 많은 시문을 남겼다. 57세 때 삼각산 중흥사에 재 입산했으나 건강을 이유로 충청도 홍산, 지금의 부여 만수산 무량사로 돌아와 59세이던 1493년 어느 봄날 홀연히 입적에 들었다.

몇 해 전 혼자 길을 떠났다. 암자로 오르는 밤길 사박사박 다가오던 어둠조차 오던 길에 멈추어 섰다. 사방이 고요, 사뭇 엄숙해 진 절간에서의 며칠이 지났다. ‘내일 아침이면 산사의 시간들이 먼 추억으로 남게 되고, 왔던 곳으로 다시 떠난다는 심사로 쉬 잠들지 못한다. 여러 날 산사 포행 길에 가끔 만났던 산새들도 귀소(歸巢)한 뒤로 두문불출이다. 가끔 객사뒤편으로 ‘스르락 스억’ 하며 바람에 스친 대나무들이 손을 흔든다. 긴 그림자를 따라 풍경을 때린 바람조차 무슨 기별이라도 할 것처럼 소리를 일으켜 경내 전각들을 돌아 마지막 밤을 보낼 객승 요사체에 당도했다. 쏜살같이 왔다간 가는 소리들이 마치 교향곡을 연출했다. 악곡 크라이맥스 쯤에 울려 퍼지는 심벌즈처럼 풍경은 이리 저리 흔들리며 또 다른 소리를 낸다. 뎅그렁 ∼ 뎅그렁 ∼’ 그 때 필자가 잔간(殘簡)으로 남겨둔 심사의 일단이다.

풍경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듯 밤새 나와의 별리를 이토록 애달파 하는가? 떠나올 때의 그 첫 마음을 영각을 돌아 설잠 처소 앞 계곡물에 씻고 바람결에 달래고 달래어 고이 접어 배낭에 챙겨 넣는다. 소리는 잦아들고 어둠이 오던 길로 다시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타난다. 어둠의 끝자락 뒤로 번뇌와 망령된 생각들이 허공중에 흩어진 산산조각 같은 퍼즐로 객방 격자창에 걸린다.

살아오며 남은 것은 무엇이며 남긴 것은 또 무엇인지 생각이 생각을 불러 세우려는 순간, 설잠의 웃음소리 들린다. “나는 알지, 나는 알지. 我會也 我會也(아회야 아회야)” 라며 「깔깔대며 웃는다」는 학랑소(謔浪笑)다. 홀연히 정신을 붙잡아 무얼 찾아 이곳까지 왔는지 묻고 또 묻는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 ‘때 아닌 때 눕지 말고 방일(放逸)하지 말라’ 는 선방 청규의 엄격함이 그간 나의 행적을 청문하고 있다. 밤새... ...

그래 똑바로 살아왔느냐는 그 물음에 애써 당당함으로 맞서보지만 이내 서글퍼지고 만다. 흉중 깊이 남겨진 세상사 상처를 새삼 말해 무엇 하리오. 어차피 한바탕 헛웃음 일진대.

문학평론가 김태진 박사는 동아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 한국헌법학회 수석부회장, 국가기관 과거사 진실위원회 사무처장, 국정원 원사편찬실장 등 공직 30년을 역임하고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 소장,NGO 붓다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대표, 사단법인 만해사상 실천연합 상임감사, 한국공무원불자연합 고문, 한국문인협회(문학평론가), 글로벌뉴스통신 문화예술위원장으로, 저서로는 헌법스케치(1997), 국가기관 과거사 정리 백서(공저 2007), 호국 인왕반야경(공저 2015), 論 아득한 성자(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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