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 김태진의 시문학 살롱,‘뜰 앞의 잣나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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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NA) 김태진의 시문학 살롱,‘뜰 앞의 잣나무’(4)
  • 김태진 기자
  • 승인 2023.04.09 0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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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태진)김태진의 시문학 살롱,‘뜰 앞의 잣나무’(4)‘
(사진제공:김태진)김태진의 시문학 살롱,‘뜰 앞의 잣나무’(4)‘

[서울=글로벌뉴스통신] 문학평론가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 ‘뜰 앞의 잣나무’

 

‘공(空)’의 노래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단 것을

띠리 띠리띠리리리 띠 띠리띠 띠리

띠리 띠리띠리리리 띠 리띠리 띠디디

살다보면 알게 돼 알고 싶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 나훈아, 최홍기(1947- ) ‘공(空)’ 가사

나훈아는 1947년 2월11일 『부산시 동구 초량 2동 415번지 7통 3반』에서 태어났다. 부산역 건너 부산국토관리청 맞은편 골목길 일대다.

필자가 초량 815번지에 살았으니 직선으로 300여 미터 밖에 안 되는 지근거리다. 당시 자전거포가 있던 안쪽 골목집으로 기억된다. 본명은 최홍기로 초량초등학교와 대동중학교를 거쳐 서울로 올라와서 서라벌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때 교복 단추를 풀어헤치고 어깨에 기타를 매고 다닌 형들 중의 한명이었다. 호적상 나이는 1951년생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와 중학 동창들은 보통 50년, 51년생 형들로 그와 또래 내지 학교를 함께 다닌 것으로 증언(?)하는 데 그리 치더라도 칠순을 넘긴 나이다. 나훈아의 형은 ‘테스’가 아니라 용산에서 레스토랑을 하던 최성기(崔成基)다.

‘공(空)’의 노래는 작사가 최홍기(예명 나훈아)가 그 동안 800곡 이상의 자작곡과 2,600곡 정도의 취입곡이 있는 데 그 중의 하나다.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는 데, 이는 그를 음유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걸림돌이다. 하지만 대중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본명 로버트 앨런 짐머맨 Robert Allen Zimmerman·83)이 있으니 그를 ‘유행시인(流行詩人)’이라 지칭하는 이유이기도하다. 

1969년 가을 무렵 초량시장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시장초입 네 군데와 육거리 일대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홍기 형 어머니는 ‘나훈아 가수데뷔’를 알리기 위해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들 손을 일일이 잡고 직접 백설기 흰떡을 나누었다. ‘우리 홍기가 서울 가서 카수가 됐어 예. 이제 나훈아라 캅니더, 잘 부탁합니데이’ 라며 떡을 돌렸다. 그날 제 어머님이 받아 오신 흰떡을 동생들과 잘 나눠 먹었던 기억이 또렸하다. 떡 덕분인지 그날 이후 라디오에선 ‘님 그리워’, ‘천리 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다 버스 통학 길에 들으면 찰떡같이 반갑기도 했다.

그 무렵 홍기 형 어머니가 초량시장 난전에서 콩나물, 두부를 팔아 뒷바라지를 했다는 눈물겨운 ‘성공담’이 한동안 장터에 나돌기도 했다. 시장은 인생의 축소판이자 희귀한 물건들이 쟁여진 것 마냥 사연도 숱한 곳이니 시장언저리에 살던 그로선 유독 살기 참 팍팍했던 민생을 눈여겨 살폈을 터. 그의 작시 대다수가 이를 말해 준다. 그리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노랫말은 나의 삶속에 들어오고, 어쩌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웅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가황(歌皇)으로 불리는 국민가수 「나훈아」는 공연무대에서 ‘공’의 노랫말을 소개한 적이 있다. “여러분, 공(空)이라는 노래 2절에 보면 ‘알면 이미 늦어도’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맞습니다. 써 놓고 보이 맞더라고요. 아프고 나서 난리 ‘굿’지기면 뭐 합니까. 아프기 전에 아프지 말아야지, 그러기 위해 '스트레스'받지 말아야 합니다. 운동해야 합니다.”

“쌔가 빠지게 고생해서 아이를 위해 살다 보이, 턱, 살만하니, 온 전신이 쑤시고, 병원에 돈 다 갔다 주는 기라, 한번 시아리 보이소, 앞으로 살날이 몇 년 남았는지, 그러하니, 평생 벌어, ‘집하나 있다.’ ‘집 팔아 뿌이소.’ 천국에 가면 부동산도 없답니다. 땅 문서 갖고 가 봐야 소용없다 아입니까?” 거친 부산말로 ‘삶의 덧없음’을 『공空』에 빗대어 말하는 그의 언설은 들으면 들을수록 참으로 일리가 있는 소리다. 고준한 선사의 법문인가? 장터 약장수의 언변인가? 거침없는 「나훈아」, 그의 노래는 고루한 세상을 깨뜨리기 위해 귓전을 향한 설파(說破)에 다름 아니다.

불자들이 법회에서 주로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어찌 보면 ‘공의 노래’다. 세상은 무상하여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고 주장할만한 것이 없다[無自性]”고 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我)가 있고 나에 대한 칠흑 같은 어리석음, 무명(無明)과 욕심덩어리 애욕(愛慾)으로 불만족과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특히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여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마음이 따로 있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허망하게 살지 말라는 또 다른 경계를 이르는 큰 가르침인 것이다. 이를 한마디 ‘공’으로 풀어낸 그의 가사는 고준한 불교사상을 야단법석으로 끌어낸 선문답(禪問答)이 아닐 수 없다.

‘아지매요! 살다보면 알게된다 카네요. 일러주지 않아도요.’ ‘모두 한바탕 꿈이었다는 걸요.’ 돌아가신 훈아 형 어머님께 중얼중얼 반야심경 한편 올린다. 묻지 않았어도 고요함 가득한 허공에 화답한다. 이렇듯 나의 행보는 훈아 형이 하듯 ‘공’을 노래하는 것, 세상을 위무하는 것, 한숨, 눈물, 삶의 애환과 닿아있는 건가? 생각은 하늘 땅 만큼 아득하고, 마음은 공[球]마냥 세상 속 이리저리 튀는 까닭에 아직도 어딜 향하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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