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3)
상태바
(글로벌GNA)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3)
  • 김태진 기자
  • 승인 2023.04.07 0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글로벌뉴스통신] 문학평론가 김태진의 서사로 읽는 시문학 살롱, ‘뜰 앞의 잣나무아래

어느 죽음

청산과 푸른 풀은

스스로 푸르르고

 

텅 빈손 왔다가는

텅 빈손 가는 구나

 

사바의

육신을 벗고

형상 없이 떠나네.

          - 혜산 박중선(19322021) 시조

(사진: 한국불교문인협회 제공) 박중선 시인
(사진: 한국불교문인협회 제공) 박중선 시인

   

혜산 박중선 시인은 남해출신으로 평생 국어교사로 지냈다. 2005년 부산 동평여자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시조시인의 길을 걷는다. 그해 퇴임기념 문집 송산산고(松山散稿)'를 펴냈다. 송산은 그의 아호다. 등단 전부터 시조에 조예가 많았던 선생은 전통을 고수하고 싶어 시조를 택했다고 했다. 처녀문집 '송산산고'를 펴낸 후 늦깎이로 등단하여 이제야 시집이랍시고 그 흔적을 남기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잡다한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어 놓으려니 부끄럽고, 한편으론 기쁨으로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항해를 시작하는 그 뜻을 펼쳐보려 합니다.”라며 오랜 산고 끝에 그 동안 모아 두었던 작품 하나하나를 정리해 나간다.

등단 13년 만인 2018년 첫 시조시집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일상을 냈다. “삶에 대한 역경과 번민을 가지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비움과 그 흔적을 감추려는 몸짓으로 보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제 세상을 향한 날갯짓에 도전하려고 합니다.”며 권두 시인의 말에서 문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이후 여러 문예지를 중심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던 선생은 신서정문학회 회장, 한국불교문인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와 국제 펜클럽 회원을 비롯 계간지 시와 수필운영위원, ‘한국불교문학편집자문위원 등으로 인생 2모작을 엮어갔다.

혜산의 시조는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시심 때문에 그의 시조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이것이 그의 시조의 강점'이라고 부산대 임종찬 명예교수는 평한다. 임 교수의 말처럼 계절을 중심으로 꽃과 강, 바다, 들판, 산과 산사를 누빈 그의 시어는 깊은 연륜을 바탕으로 시조의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으며 깊은 시세계를 탐구해왔다.

그렇듯 시인은 세상의 자연 그대로를 두고 노래하려했다. 푸른 풀은 풀대로 놓아주고 갇힘 없이 청산은 산 절로 수절로 고이 두었다. 마침내 세상에 왔던 그 손에 흙먼지 한줌 묻히지 않고 본래 왔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는 그 모습을 바로 보았다. 숱한 존재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으리라.

그의 시조 어느 죽음은 존재의 물음이자 답이었다. 사바(娑婆), 오염되지 않은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려니 무척 고독했으리만 그 형상에 속지 않고 스스로 사바를 벗어나 해방을 노래한 것이리니. 생시에 열반송(涅槃頌)에 다름없는 이 글을 써두고, 하루하루 발우(鉢盂, 스님들의 공양그릇)를 닦아가며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삶을 산 것 아닌가. 그리 볼 수밖에 없는 필자로선 애잔하다.

불현 시인을 보내며 함께해 온 시간이 많지 않은 필자로선 남긴 시어 하나하나에 천착하기 마련이나 그 행간을 채울 길 막막하여 떠난 자리가 휑하기 이를 때 없다. 가끔 부산 가는 길에 남포동 포차에서, 자갈치 어물전에서, 용두산 공원아래 부산포에서 나마 술잔 기우리며 해운대 엘리지, 서울 충무로, 나의 밝은 달동네 남산우거에서 명동블루스라도 손잡고 불러 보고픈 마음이여! 선생과 불교와 문학을 농단해 보지 못한 아쉬움이란 이리도 절절한가? 혼자로선 무너져 내릴듯하여 또 다른 구구절절을 살핀다만 역시 대단원의 결말은 사랑이다.

모두안녕! 하며 단박에 져버린 봄꽃을 보면 사뭇 그리워진다겨울지나니 거동이 어려워진 문인들의 절필아닌 절필 근황이 부쩍 많아지는 요즘이다. 문득 부음을 받기 전에 봄바람 더불어 문풍으로라도 기별 드리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