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 김태진의 시문학 살롱, '푸르른 날, 시를 찾아서'
상태바
(글로벌GNA) 김태진의 시문학 살롱, '푸르른 날, 시를 찾아서'
  • 김태진 기자
  • 승인 2023.04.05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글로벌뉴스통신] 김태진 문학평론가의 시문학 살롱, 푸르른 날, 시를 찾아서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설악무산 조오현(曺五鉉, 1932~2018), 오현스님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특별취재팀)봄꽃 사진 전시회에서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특별취재팀)봄꽃 사진 전시회에서

2007년 제19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아득한 성자』란 시다.  "순간에서 영원을 보고 영원에서 순간을 읽어내는 오도적 깨침을 날카롭게 섬세한 직관으로 꿰뚫어 보여 주고 있다. ‘한 생각이 무량겁’이라고 하는 불교적 인식을 통해 삶의 본질이 순간과 영원, 현상과 본질을 넘나드는 데 놓여지며 하루를 살아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또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오도적 인식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라는 평가를 받는 수작이다.

스님은 시조시인으로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금오산 토굴에서 고행 후 훗날 설악산 신흥사 조실,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었다. 만년에는 백담사 무문관서 4년 동안 폐관정진하다 꽃질 무렵 입적했다. 푸르른 날 그리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본다.

산같이 많은 시를 높이 쌓아두고 먼 꼭대기에서서 종이비행기 만들어 띄우던 그대, 하늘 소식을 때때마다 전했네. 

 그 꼬깃꼬깃 종이비행기에 실을 기름도 승객도 없으니 오직 깨알 같은 글자를 태워 보냈겠지. 그러고 보니 스님의 글은 글이 아니었는걸. 
 
 무자화(無字話)요, 무자설(無字說) 아니던가. 어떤 날은 빨간 비행기, 또 어떤 날은 파란 비행기에 천방지축으로 글을 태워 날려 보냈지. 

 오방색 깃발 날리는 소리만 펄럭이고 그것이 진작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 정녕 몰랐지. 그대로가 부처인 줄을 몰랐지. 만 사람이 몰랐다고 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하고 말한다네. 
 
 행여 많은 이들이 붉고, 푸르고, 희고도 누른색으로 된 다양 각색의 언설로 빗대어도 그것은 ‘아득한 성자’이어라. 행여 만인들이 다 아는 듯 그리 말하거나 말거나 남겨진 기록을 요리조리 맞대어 봄이 어떨까한다. 

 그리하여 문자들이 살아나 오방 깃발 펄럭이는 소리, 적, 청, 황, 백, 홍색으로 빛나나니 필시 눈이 있는 자는 듣고 귀가 있는 자는 볼 지어라. 말과 글이 뒤섞여 꽃 비 내리 듯 오늘 문득, 봄 노래 소리들린다. (김태진, 문화예술위원장, 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