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불언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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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불언장단
  • 김외득 기자
  • 승인 2022.12.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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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항상 남을 통해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반성해야
주성 박형태(연출가, 수필가, 무궁화봉사단회장)
주성 박형태(연출가, 수필가, 무궁화봉사단회장)

[울산=글로벌뉴스통신]박형태 기고.

남들은 답답할 때 등산을 하거나 여행을 훌쩍 떠난다고 한다. 혹자는 맥주 한 잔 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불행히도 나는 그런 호사스러움조차 즐기지 못하니 유튜브 정치 풍자를 보며 스트레스를 푼다. 지난달 20일(일) ‘KBS 더라이’란 정치 토크쇼에서 한 패널이 올린 사자성어가 눈에 번쩍 띄었다.「불언장단(不言長短)」이다.
 
조선 시대에 황희 정승은 인품이 곧고 맑아 지금도 회자되는 공직자의 표본이다. 황희가 젊은 시절 초보 공직자일 때 일화다. 황희가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다 보니 한 농부가 쟁기로 논을 갈고 있었다.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끌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검은 소, 다른 한 마리는 누런 소였다. 잠깐 쉴 겸 황희는 나무 밑에 앉아 농부가 일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농부는 소를 그대로 둔 채 쉬기 위해 나무 밑으로 왔다. 황희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농부에게 물었다. "두 마리 소 가운데 어느 소가 일을 더 잘 합니까?" 농부는 황희를 끌고 멀리 가더니 황희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누런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검은 소는 꾀를 부리거든요." 황희는 하하 웃으면서 "그게 무슨 큰 비밀이나 된다고 귀에 대고 속삭이십니까?" 하자 농부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상한 선비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일지라도 어느 한쪽은 좋고, 한쪽은 나쁘다고 하면 기분이 상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소가 듣지 않도록 귀에 대고 속삭인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황희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시골의 농부도 이같이 사려가 깊은데 글을 배우는 선비인 자신은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했다. 큰 깨달음을 얻은 황희는 그 뒤로 항상 겸손하게 자신보다 남을 높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함께하는 사람이나 항시 함께하는 아랫사람을 두고 잘하느니 못하느니 하는 평가는 하지 않거나 인색해야 함을 깨닫는 순간이다. 나는 함께 하는 강사, 문화예술인, 동호회 회원들이 강의나 연기나 공연을 조금 잘하면 “잘하신다! 제일 잘 한다”라고 자주 말하는 성향인데 주변에서 난리다. 일부 대표들은 절대 공개적으로 “누구 잘 한다 못 한다. 하지 마세요!”라고 어필 하길래 “잘한다고 하면 힘을 내 더 잘할 것 아닌가요?” 나는 “춤추는 심리학(2007)”을 직접 집필한바 있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무분별한 칭찬은 조직을 와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연출가는 출연자의 한두 번의 연기나 공연에 섣부른 평가는 내리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눈빛만 보아도 알 정도로 진한 맛이 나고, 일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오랫동안 일 할 수 있고, 서로 보듬으며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함께 오랫동안 인생이란 무대를 만들며 공유하는 것 또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가정이든, 회사든, 국가든 시시때때로 어려움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언제 어떤 힘든 상황에 오더라도 난관을 해쳐나가야 할 사람은 가족이요! 동료요! 함께하는 공동체다! 혼자 안간힘을 써 본들 해결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힘을 보태 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가정도, 회사도, 국가도 무너진다. 일부 한두 사람이 아니라 팀웤(Team Work)이 조직의 사활(死活)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임을 알 필요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시골 촌부보다 사려 깊지 못하고, 주변의 조언(助言)을 신중하게 담지 못했던 것 같다. 각자에게 칭찬과 충고를 하고 싶다면 농부가 황희의 귓속에다 대고 누른 소 낫다고 하는 방식을 택해 볼까 한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남을 통해 배워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보다. 혼자 천방지축 날뛰기는 하지만 별 소득도 없고 보탬이 못되면서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불언장단(不言長短) - 남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의 장단점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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