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글로벌뉴스통신]
제주 떠나 정읍에서*
- 오현단五賢壇 우암 송시열 적려비 탐방
송 영 기
삼천번 실록 거명 오히려 구차하다
살아서 올곧음을 가르치고 지켰으니
주상의 탑전에서도 주저함이 없었네
강진서 뱃길가다 보길도* 머물었고
탐라서 석달 열흘 한양으로 압송 중에
정읍서 만난 금부도사 저승사자로구나
공자님 수명 팔십 송자*도 잘 아심에
의연히 사약받고 한 사발 더 청하시니
문하에 제자 구름같고 '죽어 명성 만대'가네*
가슴에 쌓은 학문 일신에 담은 덕망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하고 줄기차서
고종명 아니 했어도 이 강산을 굽이쳤네
(註) * 우암 송시열 (尤庵 宋時烈, 1607~1689)
천하대로 송자 天下大老 宋子
* 귀양가다 태풍을 피해 '보길도'에서 지은시
海中有感
八十餘年翁 滄波萬里中
一言胡大罪 三黜亦云窮
北闕空面首 南溟但信風
貂구舊恩在 感激泣孤忠 (宋時烈)
여든이 넘은 늙은이가
만리 푸른물결 한가운데 왔도다
말 한마디가 어찌 큰 죄랴마는
세번이나 내쫒겼으니 앞이 막혔구나
북녁 대궐을 향해 머리를 돌려보지만
남쪽 바다에는 계절풍만 부네
귀한 옷을 내리셨던 옛 은혜를 생각하면
외로운 충성심에 눈물만 흐르는구나
* 언전諺傳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
중국에 사신 가는 사람이 송시열의 이름
으로 사주를 점쟁이에게 물으니,
"이 사람은 생전에는 시비是非가 있으나,
죽은 뒤에는 명성이 만대萬代에 끊이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
" 云 有赴燕使臣 以先生命 問於穀顚子
對曰 此人生前終有是非 死後命流萬代"
* 국립청주 박물관 간행 '우암 송시열' 025쪽
* 성인 聖人이 내려준 아이(아명,성뢰 聖賚)
출생하는 날 새벽에 아버지 수옹 송갑조가
공자가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집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고 지어준 아명(兒名) 025 쪽
* 외모가 준수하고 비범하여 무당이 어린
송시열을 보고는 " 이 아이 때문에 신神이
내리지 않는다" 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024쪽
* 필자가 고등학생때 동네 노인이 은진 송씨인 내게,
"우암 선생은 '우물에서 죽는다' 는 참언이
있었는데 제주도에 귀양가서 100일 정도
안치 되었다가 도성으로 취조 받기 위해 돌아
오는 중, 전라도 땅 정읍(井邑,우물 고을)에서
사약을 받아 죽으니 기이하다"고 말했다
(향년 83세)
-초상화 상단 중앙에 정조대왕이 지은 글이 있다-
절개와 의리는 천년세월이 흘러도 고상하여
평생동안 나는 존중하였다.
역대 임금들도 누차 칭찬하고 높이 평가하였으니
사림 士林들인들 어느 누가 공경하지 않겠는가 ?
종횡무진으로 내뱉는 말씀은 모두 이치에 합당하여
아름답게도 학문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천하를 다스릴 원대한 계획을 펼치지 못하고
아 ! 어지러운 세상을 만났다네
한양의 사당 祠堂에
엄숙하고 고고한 선생의 초상화가 있어
유생들이 모두 참배하러 갈 때에
승지 承旨가 한 잔 술을 올린다.
1778년 바쁜 국정 國政에 틈을 내어 글을 짓다.
-초상화 오른쪽 상단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자찬시-
자연 속에서 사슴들과 함께 지내며
초가집에서 사누나.
창문은 환히 밝고 주위가 고요할 때
주린 배 참으면서 책을 보았다네.
네 모습 볼품없고
네 학문 텅 비었구나.
천제天帝의 진실한 마음을 어기고
성인의 말씀 어겼으니
너는 단언하건대
책벌레구나.
1651년 우옹 尤翁이 화양서옥에서 직접 글을 짓고
조심하는 마음을 가지다.
* 출처- 조선시대 초상화1, 번역글 장진아. 국립중앙박물관 2007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