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글로벌뉴스통신]
벽계구곡
송 영 기
청화산 서쪽 기슭 은거하며 사던 선비
제월대 뜬 밝은 달 벽계천에 마음 씻고
이따금 부는 바람에 그 맑음을 즐겼네
학창의 가다듬고 서책 펴고 앉았으니
건너편 언덕 넘어 문인들 찿아옴에
담담히 묻고 대답하며 고금의 일 논했네
산넘어 큰 강있고 산새우는 노산 아래
흰구름 벗하노니 하루해가 느긋한데
늙도록 천리 밖에서 근심하며 붓 들었네
올바름 추구함이 평생의 실천이요
그름을 물리침에 주저함 없었더니
산림에 숨어 있어도 조당(朝堂)에서 알았네
(註) *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1792-1868)
벽진이씨(碧珍)로 정조 16년에 태어나서 고종 5년에 졸하였다.
초명은 광로(光老)이지만 철종임금의 아버지 이름을 피휘(避諱)하여 바꿨다.
조선후기 성리학자로 화서학파를 형성하여 외세의 침략이 잦던 혼란의 시기에 관직에 오르지 않고 벽계구곡에서 평생 공부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石泉三十年 석천 골짜기 살던 세월 30년
幾來此山中 몇번이나 이 산중에 올랐던가
疊疊千古懷 첩첩 쌓인 지난날 돌이켜 보니
讀書尙不足 책 읽기는 아직도 부족하여라.
(*아버지의 3년상을 마치고 28세부터 지금은 없어진 고달산
고달사에서 오랜기간 많은 책을 읽으며 지은 시라 함)
대원군의 정책을 정면으로 공격한 당대의 직언자로 위정척사 사상의 대표자.
한민족의 주체의식을 굳게 지킨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후학으로 양헌수,최익현,유인석,
김구 등 애국지사와 민족투사들이 있다
노산사 사당에는 화서 이항로가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와 조선 중기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
(宋時烈)을 존경하여 그 사상을 잇기 위해 위패를 모시었다.
'인간이 가져야할 도리'등을 밝힌 학문이 성리학인데, 주희는 성리학을 학문으로 세웠고, 송시열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며, 이항로는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이항로가 죽은뒤 후손들이 이항로의 초상화와 위패를 함께 모시고, 매년 9월 15일에 제향을
지내니 묘소는 이항로 생가 노산사지 뒤에 있다
* 蘗溪九曲, 霽月臺, 蘗溪川,靑華山(通方山), 蘆山,
鶴氅衣, 蘆山八景, 蘆山祠(址), 古今, 山林, 朝堂
朝廷, 朱子/ 朱喜, 尤庵 宋時烈, 門人(門徒)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시조시인 송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