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문의 四始 으뜸 耆老會를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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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권문의 四始 으뜸 耆老會를 살리자!
  • 권병남 기자
  • 승인 2021.12.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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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권문의 사시(四始) 으뜸 기로회(耆老會)를 살리자!

(사진제공:권오철)권문의 사시(四始)의 으뜸 기로회(耆老會)를 살리자!
(사진제공:권오철)권문의 사시(四始)의 으뜸 기로회(耆老會)를 살리자!

안동 권씨 하면 일단 ‘아이구! 양반이 시군요.’ 한다. 의례적인 것도 있지만 실제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권문의 사시(權門四始)’에서 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권문이 권력과 가까운 거리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런 인식을 갖는 것은 권(權)의 권력이라는 이미지와 안동이 영남 지역이어서 현대에 득세하니 그럴 것이라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물론 전통의 맥을 잇는 여러 유적이나 사상이 주는 것도 크다. 안동은 [정신문화의 수도]이며 1000명의 독립운동가의 고장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 권문의 시조를 중심으로 한 삼태사의 병산전투의 승리야 말로 오늘의 ‘코리아’가 있게한 근본이다. ‘코리아’가 있으니 고려가 있고 고려가 있으니 ‘삼국(三國史記,三國遺事)’이 있고 만주의 대벌판과 몽골의 칸과 돌궐의 중앙아시아가 우리의 판도로 되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지금 세계10대 경제대국, 6위 군사대국으로서 그 웅혼한 기상이 다 이 권문의 시조로부터 발현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안동권(安東權)의 사시(四始)는 무엇인가?

[기로지시(耆老之始)]로 70세 이상으로 전직 정2품(장관급)이상 문관을 위해 태조 만든 것인데실제 조선 개국에 공로가 있는 15世 靖簡公 僖(정간공 희)와 14世 文節公 仲和(문절공 중화)가 제일 첫머리에 登錄(등록)되었다. 그 외 權門出身(권문출신)으로 참가한 분은 다음과 같다. 權仲和(권중화) 權僖(권희) 權軫(권진) 權弘(권홍) 權轍(권철) 權憘(권희) 權大運(권대운) 權大載(권대재) 權說(권열) 權渻(권성) 權業(권업) 權是經(권시경) 權示商(권적) 權噵(권도) 權愈(권유) 權相一(권상일) 權裕(권유) 權常愼(권상신) 權(권엄) 權敦仁(권돈인) 權膺善(권응선)
 
[문형지시(文衡之始)]는 영의정(총리) 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대제학(대제학,문교장관,서울대총장)을 말하며 초대 대제학은 문충공 양촌 권근(文忠公 陽村 權近)이다. 권희의 아들로 이후, 14世 중화(仲和) 17世 제(踶) 18世 람(擥) 27世 유(愈)가 있고 고려에는 12世 문청공, 13世 국재공등이 있다.
 
[호당지시(湖堂之始)]는 湖堂(호당)이란 世宗8年(西紀 1426年) 실시되었는데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이며 젊고 재주있는 뮨신으로서 임금의 특명을 받아 공부하는 곳인데 대제학의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영재들의 양성소로 이에 제일 먼저 일재 권채(一齋 權採)가 대제학(大提學),변계량(卞季良)의 추천으로 입당하였으며 이후 호당에 19世 건(健),경유(景裕),달수(達手) 22世 운 (雲), 26世 중경(重經)이 있다.
 
[족보지시(族譜之始)]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안동권씨의 성화보(成化譜)이다.

성종 년 (1476년)에 창간하였으며 양촌 권근(陽村 權近公)의 아들 지제공 권제(止齊公 權踶)가 가보소첩(家譜小牒)을 편수한데서 비롯되고 권제(踶)의 아들 소한당 권람(所閑堂 權擥)이 뜻을 받들어 자료를 수집하였으나 역시 끝을 맺지 못하였던 것을 그의 내종 서거정(內從 徐巨正)이 상주판관 박원창(尙州判官 朴元昌)과 대구부사 최호원(府使 崔灝元)과 더불어 보완하여 도보 2권(圖譜2卷)을 만들었다. 이를 보완하여 3질(秩)로 편찬한 것을 외손인 경상감사 윤호(慶尙監司 尹濠)에게 부탁하여 안동부에서 간행한 것이 성화보(成化譜)이다. 특징은 매우 민주적(남녀 태생순서,여성명 명기,외손 명기,재산동등분배,재혼녀 1사위 2사위 명기)이고 역사성(권씨는 절반이 안되니 타성의 역사도 알수 있다.)을 띤 기록이다.

이렇듯 자랑스런 4시(四始)를 계승하는 것은 권문의 일인 동시에 민족사에 있어서도 기여하는 하는 바이다.

[호당]은 독서당으로 성동구에 있으니 권문이 적극 참여하여야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분이 족친중에 있음이니 이분과의 만남을 통해 그 뜻을 이어야 할 것이다.
[문형]은 교육부이니 연구부서에 있는 권문의 인재풀을 작성하여 권문이 나름 격려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족보]는 지금 의성에 족보박물관을 만든다고 하지만 이는 마땅히 안동 삼태사 기념로 근방, 안동부 청사 부근에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선 [기로소] 문제를 먼저 추진해야한다. 이는 70년의 전통을 가지고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북구 길음동 권태훈 옹 소유 4층 건물이 재개발에 의해 허물어 지고 있는 바 이를 권문의 노력으로 복원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제공:권오철)초대 권효식,2대 권태훈,3대 권오기,4대 권오봉,5대 권영익,6대 권덕주,7대 권병홍,9대 권영길,10대 권정택 
(사진제공:권오철)초대 권효식,2대 권태훈,3대 권오기,4대 권오봉,5대 권영익,6대 권덕주,7대 권병홍,9대 권영길,10대 권정택 

 

 

(사진제공:권오철)기로회장 권오일
(사진제공:권오철)기로회장 권오일

권오일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권씨가 왜? 양반이요. 사시(四始)가 있어서 그렇고 그 중 기로소는 태조 이성계가 정간공(權僖)을 위시한 원로들을 위해 만든 제도이고 실제 권문을 위한 것이요. 그런데 이 전통을 저 초대 회장(권효식)님이 길을 트고 실제는 이 사무실 까지해서 2대 권태훈 회장이 다 해준 것이지요. 기로소도 처음엔 주로 정간공 후손 위주로 해왔지만 이제는 제도를 바꾸어서 70세 이하라도 준회원 가입하고 나름 보완책을 서둘러야지 조금만 지나면 종친회도 그렇고 기로회는 뭐 말할 것도 없이 되겠지요.”

4始 중 문형,독서당,족보효시 문제도 독서당은 성동구와 협조하여 재건과 운영을 강구하고 족보는 의성 족보박물관,안동국학원등과 연계 전시연구실 설치등의 사업이 있고, 문형은 학자들 중에 찾으면 되고, ‘당대 구봉군’도 있으니 현대에 구봉군에 준하는 기여를 한 분야의 집안을 발굴하고 선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권애라,김시현이 마지막을 보낸 북한산 기슭에 [의열정사(義烈正舍)]라는 작은 방을 만들고 있는 참에 관계된 책을 보니 인연이 아닌가?

며칠 뒤 손녀 김영방님에게 연락하니 ‘아 그 책자 몇 권만.. 우리도 없어요. 그리고 은평구에 ‘불암정사(拂光精舍)’ 터나 인근에 김시현,권애라 기념당 사업 추진을 한다면.. 근데 우리 쪽에선 이제 여유도 생각도 없고.오직 저만 관심이 있으나 저도 노모와 손녀 케어 등으로..’ 라고 하니 세월은 무상하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니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전화위복(轉禍爲福) 속에 이루는 바가 있으리라 믿어 마지 않는다.

이제 권문의 사시중 [기로소] 재건은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몇 년전 [독서당(湖堂)] 재건을 위해 애쓰시던 권** 선생의 서늘하고 애절한 눈빛이 눈에 선하다. 이제 [기로소]의 재건이 곧 권문의 재건이니 모두 진정한 자세로 겸허히 문사(門事)에 임해야 할 것이다.

안동 출신 권오철(195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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