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GNA) 최우림 수필 작가의 “낙엽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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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NA) 최우림 수필 작가의 “낙엽에 부쳐”         
  • 김진홍 논설위원장
  • 승인 2021.11.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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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서울 여의도 공원의 낙엽 모습
(사진: 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서울 여의도 공원의 낙엽 모습

[서울=글로벌뉴스통신]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더위가 결코 물러설 것 같지 않을 기세로 내리쪼이더니 시절에는 어쩌지도 못하고 물러갔다. 자연의 이치는 하나도 그른 것이 없구나. 나무마다 싱그럽던 그 푸름은 밀려나고 곱디고운 색으로 물들고 있다. 영광이었던 흔적을 지우며 다가올 모진 겨울을 대비한다.

그리고는 낙엽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가겠지. 길 위에 널브러져 있는 노란 은행잎이 가을비에 촉촉이 젖는다. 고운 그 노랑 잎이 장한 생을 다하고 이제는 떠나가는 낙엽이 되었구나.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밟히기도 하고, 걷어차이기마저 한다. 지나간 영광이야 어떠했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우수에 젖은 가을 나그네가 이를 밟고 지나간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길, 산길, 호수 길을 걷는다.

동네 길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벚나무, 은행나무가 줄 서 있다. 느티나무 단풍을 보노라면 참 신기롭다. 노르스름하게 물들다가 차츰 그 색깔이 주황색으로 바뀐다. 한 나무인데도 가지마다, 잎마다 단풍이 드는 때와 색깔이 다르다. 이렇게 나무들이 나름대로 가을을 아름답게 연출한다.

우리 산은 소나무와 참나무로 혼효림(混淆林)을 이루고 있다, 우리 기상인 소나무는 쓰임새에서 참나무보다 앞선다지만 단풍으로는 영 별로다. 참나무는 단풍 풍경을 이루는 주역이다. 참나무 잎이 불그레 물들다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점차 그 빛도 짙어진다. 그리고는 찬란했던 그 잎들이 칙칙한 가랑잎 되어 땅 위에 너부러진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낙엽-2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낙엽-2

호수 길에 들어서면 소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메타세쿼이아, 벚나무, 은행나무로 숲을 이루고 있다. 단풍이 들면 나무마다 다른 색을 띤다. 벚나무는 빨간색을, 소나무나 메타세쿼이아는 별다른 특색이 없다. 이 나무들에서 내린 낙엽이 뒤섞여 바람에 이리저리 몰리며 흐트러진다. 가을을 즐기려고 나 온 사람들이 낙엽을 밟으며 어런더런 지나간다.단풍은 뭐니 뭐니 해도 붉은색이 풍부해야 그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룬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일지라도 이보다 더 아름답게 그릴 수는 없다. 아무리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일지라도 이런 하모니를 이루어낼 수 없다.

참으로 자연은 경이롭다.  어떤 아름다운 이야기이든 다 때가 있다. 그때가 지나면 모두가 하나같이 잊힌다. 녹음방초도, 아름다운 단풍도 다 한때다. 아!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무엇이뇨. 가랑잎 하나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고 있다. 몇 남지 않는 나뭇잎을 떨어뜨리려 무정한 바람은 나무를 들입다 흔든다. 그걸 지키려 나무가 아금받게 버티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저렇게 살아왔지 않았을까.
  
지상에 내린 낙엽과 눈을 한번 보자. 낙엽은 내릴 때도 무질서하고, 내려서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낙엽이 누리는 자유분방(自由奔放)함이다. 눈도 무질서하게 내린다. 그러나 일단 내린 눈은 정연(整然)하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곤 하얀 신세계를 만든다. 누가 눈과 낙엽을 두고 어느 것이 더 민주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려서는 질서를 지키는 눈을 택할 것이다. 누가 더 자유롭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낙엽의 손을 들어 주리라.  낙엽 밟을 때 들리는 바스락 소리가 참 좋다. 참나무나 느티나무 같은 활엽수 낙엽을 밟는 감촉은 부드러우면서 미끄럽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소나무나 메타세쿼이아 낙엽을 밟으면 마치 지체 높으신 분 사무실에 깔린 융단을 밟는 것같이 푹신하다. 낙엽을 밟고 가노라면 흙에서 살고파 하는 마음이 인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낙엽-3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낙엽-3

그 아름답던 단풍도 낙엽이 되어 길 위에 너부러져 뒹굴면 참 귀찮다. 산길 위에 떨어져 있는 낙엽이야 그대로 두어도 된다. 그러나 호수 길이나 동네 길 위에 아무렇게 널려 있는 낙엽은 쓸어야만 한다. 한꺼번에 다 떨어진다면 좋으련만 얄밉게도 곰비임비 일어난다. 그러니 수시로 쓸어야 한다. 낙엽을 밟는 즐거움마저 쓸어간다. “왜 낭만을 쓸어 가느냐?” 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도 같은 심사다.  예전에는 낙엽을 쓸어 모아서 태웠다. 그때 피어오르는 그 연기, 그 구수한 냄새는 훈훈한 풍정이었다. 그 냄새가 손에도 옷에도 배였고, 바람을 타고 골목골목으로 퍼져갔다. 오가며 낙엽을 태우는 그 불에 손을 쬐면 따스한 열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 열기는 생의 비정함 속에서 버둥대던 나를 깨단하게 했다.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도 북돋웠다. 
  
낙엽을 밟고 걷노라면 여러 가지 상념에 젖는다. 이것을 컴퓨터 앞에 앉아 정리한다. 산책 때 떠올랐던 기막힌 생각이 맴돌기만 하고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하여 붓방아질이나 하고 있다. 마치 어디에 두었는지 언뜻 생각나지 않는 지갑을 찾듯 애가 탄다. 낙엽은 바람에 날려 자유로이 어디든지 간다. 이를 들추어 생겨난 말이 엽서(葉書)다.

일본에서 전해온 말이긴 해도 참으로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이름이다. 엽서는 언제나 사람을 북받치게 한다. 그 한 장에 쓰인 몇 마디는 부모님 내린 꾸중일 수도, 선생님 주신 격려일 수도, 뭉클한 첫사랑 고백일 수도, 친구가 보내온 안부일 수도 있다. 이 모두가 뿌듯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그러면서 무엇인가 부족한 아쉬움을 남긴다. 엽서는 바로 골막한 이 맛이다. 어느 날 기억이 가물가물한 벗으로부터 엽서 한 장이 뜬금없이 날라 왔다. 그 반가움은 전화 열 통화를 받은들 어찌 이보다 더 애당길까. 역시 가을에는 편지가 제격인데 이를 잘 알면서도 엽서 한 장 쓰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정을 담아서 엽서라도 띄워볼까.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낙엽-4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기획팀) 낙엽-4

이런 우리 정서가 문명이 낸 이기에 떠밀리고 있다. 손쉬운 이기가 예부터 오가든 정마저 멀어지게 하고 있다. 문명이란 편리할지언정 다 좋은 것만은 아닌데……. 이렇게 사람을 강파르게 만든다. 낙엽에 부쳐 또 다른 감회에 젖는다. 낙엽이 제 할 일을 다 하고는 어디론가 간다. 갑자기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번뜩 떠오른다. 덧없이 살아온 날들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크게 이루지도, 많이 모으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름 애쓰며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게 하는구나. 영화가 끝난 허무한 껍질을 밟고 걷는다. 꿈꾸며, 노력하며 건몸을 달고 살아온 지난날은 한갓 낙엽이 되어 흩어지고, 다가올 날에 대한 막연한 걱정만이 떠오른다. 여기까지는 왔는데 어디까지 더 가야 하는지? 이런 나에게 낙엽이 “아서라! 이제는 모두 잊어라.” 하고 이르는구나.

 

최우림 수필작가 프로필 :전 현대중공업 근무, 전 전경련 경영자문위원, 현 고경력과학인으로 활동, 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현 한국수필가연맹  회원, 사진은 최우림 수필 작가의 최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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