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8월 11일, 한국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 독립운동가 윤희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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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1일, 한국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 독립운동가 윤희순 출생
  • 주성민 기자
  • 승인 2021.08.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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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김흥순)페이스북에 올려진 김흥순 글로벌뉴스통신 자문위원 글에서 캡처
(사진출처:김흥순)페이스북에 올려진 김흥순 글로벌뉴스통신 자문위원 글에서 캡처

[서울=글로벌뉴스통신]김흥순 자문위원.

윤희순 독립운동가는 강원도와 충청북도 양 도에 연관이 있다.

충북 중원군(현재 충주)가 본적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기는 경기도 양주서 태어났다.

강원도는 삶이 강원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2021년 여성 의병장 윤희순 생가터가 한때 경매 위기에 몰렸다는 뉴스가 안타까웠다. 부동산 투기 광풍이 독립운동가 집안에 몰아닥쳤다.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발산리의 윤희순 의병장 유적지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가 살았던 사랑채와 의병의 승전을 기원했다는 우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윤희순 의사는 일제강점기에 시아버지 유홍석이 의병으로 출정하자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조달했고 여성들의 의병활동을 이끌어내는 데 적극 앞장선 강원도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명성과 달리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생가는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0여년 전 그가 살았다는 사랑채 건물도 나무 기둥 곳곳에 금이 가 있는 상태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유적지 관리를 지자체가 아닌 이 건물의 소유주인 윤희순 의사의 후손이 도맡아 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에 한계가 있다. 

심지어 생가터 건물들은 경매에 넘어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건물들은 경락(경매에 의해 동산 또는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일) 전인 지난달 당시 소유주였던 윤희순 후손의 누나 유모씨가 가까스로 매입했다.

(사진출처:김흥순)1860년 8월 11일, 한국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 독립운동가 윤희순(尹熙順) 출생
(사진출처:김흥순)1860년 8월 11일, 한국 최초 여성 의병 지도자 독립운동가 윤희순(尹熙順) 출생

윤희순은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났다. 16세 되던 1876년 춘천 의병장 외당 유홍석의 장남이며 팔도창의대장 의암 유인석 조카인 유제원과 결혼하였다.

시아버지의 영향으로 의병운동에 뜻을 두게 되었다. 

일본이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1896년 단발령을 발표할 무렵 윤희순은 "나라를 구하는 데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여성들의 의병 활동을 촉구했다.

1907년 일제가 고종황제를 폐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의사는 군자금을 모아 가정리 여의내골에서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고 탄환, 유황 등으로 화승총에 쓸 화약을 직접 제작·공급하는 탄약제조소를 운영하였다.

관군과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하던 밀고자를 꾸짖었고, 그런 가운데 여성 30여 명으로 여성의병대를 조직하는 한편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 을 남겼으며, 이는 최초의 한글 의병가이자 민족 저항 시가인 '의병가사집'이 남아 있다.

1911년엔 중국 만주로 이주, '대한독립단'에 가입하는 등 항일운동을 지속했고 '노학당'과 조선독립단학교를 설립하는 등 군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애국투사로 길러내고자 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고 일제에 의해 노학당이 폐교되자 무순 포가둔으로 이주 중국인들과 힘을 합쳐 조선독립단을 만들었다.

아울러 1926년에는 조선독립단 가족부대, 조선독립단 학교를 설립하였다.

꽃다운 삶을 광복을 위해 바친 그는 40년 이상 지속된 일제 핍박 속에서 아들 유돈상이 일제 고문으로 순국한지 11일 만에 1935년 76세 나이로 이역만리 혜성현 묘관둔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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