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비석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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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비석 백비
  • 권오헌 기자
  • 승인 2020.08.25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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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가치관.
-. 청렴, 공직자 의식 전환부터.
-. 청렴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오헌 기자)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오헌 기자)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장선=글로벌뉴스통신]“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한 말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청렴이 늘 자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아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청렴이 아닐는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공직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시되기에 청렴의무 이행으로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전남 장성군은 호남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비의 고장이자 청백리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전남 장성군 시골 마을 길 끝에서 만난 노송 우거진 언덕. 묘 앞 중앙에는 아무 글씨도 없는 흰 비(백비)가 서있다. 황희, 맹사성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청백리로 꼽히는 박수량 (1491~1554) 선생의 백비(글 없는 비석)다.

조선시대 한성부판윤과 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3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직생활을 했지만 뇌물은커녕 밥 한 그릇, 술 한 잔 얻어 마시지 않을 정도로 청빈했다.

그가 죽은 후 장례를 치를 비용도 없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명종(조선 제13대 왕)은 장례비와 함께 비석을 하사하며 “어설픈 글로 비문을 새기는 게 오히려 누가될 수 있으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명했다 한다.

박수량 선생의 본관은 태인. 자는 군수. 아버지는 종원이다. 1514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부정자·전적·예조좌랑·지평 등을 지냈다. 그 뒤 고부군수·보성군수·성균관사성·내섬시정·군기시정 등을 역임했다. 1534년 함경도경차관이 되어 지방 관아를 순시중 안원보권관 전주남이 마음대로 야인들에게 우마를 준 사실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다가 투옥되었다.

1536년 동부승지·좌승지·나주목사, 1537년 함경도관찰사, 1539년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지냈다. 1546년(명종 1) 동지춘추관사로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뒤 지중추부사·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이후 경기도관찰사·호조판서·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생전에 주세붕과 교유가 깊었으며 청백리에 뽑혔다. 시호는 정혜이다.

선생의 청렴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대적 배경에 있다. 16세기 당시 조선의 양반 관료는 단순히 한 집안의 가장을 넘어 가문을 책임지는 어른이었다. 고위 관료가 되면 상당한 규모의 친족집단을 보살펴야 했는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거나 가까운 친척 중에 벼슬한 사람이 없으면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오헌 기자)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사진:글로벌뉴스통신 권오헌 기자)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박수량 선생의 묘와 백비.

그런 시절에 박수량 선생은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가난함은 물론 일가로부터 숱한 원망을 듣는 일까지 감수하는 삶을 지켜낸 것이다.

선생의 서울 공직생활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울에서 변변한 집 한 칸 갖지 못했을 만큼 청렴했다.

또한, 이를 전해들은 명종은 크게 탄복해 장성군 아곡리 하남골에 99칸의 집을 지어 청백당(淸白堂)이란 이름과 함께 하사했다. 현재는 ‘청백한옥’이란 이름으로 개관해 교육생들에게 한옥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박수량 선생이 관직에 있는 30여 년 동안 청렴한 생활을 꼿꼿이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선택지 앞에서도 높은 도덕성으로 합리적인 판단과 책임을 갖고 행동했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내가 진정으로 올바른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내면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그때보다 더 많은 선택지가 놓여있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공직자로서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할 자존감이라면, 청렴을 꼽는다. 청렴은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조선의 청백리 박수량 선생의 백비는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묘비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 청렴의 의미가 무엇인가 묻는 체크리스트가 아닐까? 오백여년이 지난 뒤에도 후대에게 기억되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 뚜렷한 목표 없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는 오늘 나에게 하는 질문에 달려있다.

박수량 선생의 묘 앞에 서니 언론인으로서의 부끄러움과 청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며, 우리 선조들은 이렇듯 청렴한 생활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는데 요즘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졌으며, 목민관의 참뜻은 두고두고 빛바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또한, 음식점 ‘청자연’은 소박한 자연 밥상으로 청백리 박수량 선생의 검소한 밥상을 모티브로 단출하게 짠 식단이다. 이를 “청렴밥상”이라고도 한다. 주인이 직접 주변 산과 들에서 채취한 나물과 채소 등으로 만든 음식들이 깔끔하고 맛이 정갈했다.

선생의 삶을 닮아 하얀 백비처럼 우리 마음의 깨끗한 도덕성이 개인의 자존감을 높이고 깨끗한 청렴사회로 거듭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자:이 글을 통해 전남 장성군을 자세히 소개해주신 임영미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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