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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홍련암 관음굴

[서울=글로벌뉴스통신]

(양양 낙산사 의상대)

 

낙산사 홍련암 관음굴

                송 영 기

의상대 난간에서  동해를 바라보니,

수평선 아득한데  파도치는 우뢰소리,

물보라 부딛친 바위

신령스런 거북됐네.

 

홍련암 마루 아래 엎드려본 관음굴 앞,

바위에 깃털 푸른 한마리새 내려앉아,

굴속을 응시하기에 

다시보니 파랑새라.

 

불현듯 원효의상 스님전설 생각나서,

사진을 찍을려니 순식간에 사라졌고,

마음에  품은 그 청조靑鳥  

하산하며 놓고 왔네.

           

 都雲(도운) 宋永起/시조시인,서울

 

(동해 바닷가 홍련암의 원경)
(홍련암 마루아래 관음굴로 들이치는 파도)

(註)

1. 홍련암 주련(柱聯)

白衣觀音無說說

南巡童子不聞聞

甁上綠陽三際夏

巖前翠竹十方春

백의관음 말없이 설법하시고,

남순동자 들음없이 들어주시네.

병속의 버들가지 언제나 여름인데,

바위앞에 푸른대나무 온세상이 봄이네.

 

(홍련암 법당아래 관음굴로 철석이며 몰아치는 거치른 파도)

(2) 원효대사 전설 (삼국유사)

(신라 진평왕39년,617 -신문왕 6년,686)79세

일찌기  원효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오는 데,벼를 베고 있는 흰옷 입은 여인이

이 있어 벼를 달라하자,벼가 아직 익지 않

았다고 대답했고, 다시 길을 가다가 더러운

속옷을 빨고 있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하니

빨래를 빨던 더러운 물을 떠주어 물을 버렸

다.

이때 소나무위에 있던 파랑새가 "스님은

가지 마십시요"하고는 숨어 버렸다, 원효

스님이 돌아보자,그 여인은 사라지고 짚신

한짝만 남아 있었다.절에 와서 보니 관음상

앞에 나머지 짚신 한짝이 있어 스님은 비로

소 길에서 만났던 그 여인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원효대사 영정 - 다음백과 사진)

" 마음이 일어나므로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땅막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았다" 

 661년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당나라 유학을

하러 당항성을 지나다 토굴에서 밤중에 갈증

을 느껴 해골물을 맛있게 마신후 이튿날 날이

밝자 어제밤 맛있게 마셨던 물이 해골물 이었음

을 알고, 깨달은바가 있어,유학을 포기하고 되돌

신라로 돌아서니, 도반 의상만 당나라로 떠났다.

 

(의상대사 영정 - 위키백과 사진)

3.의상대사 전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신라 진평왕47년,625 -성덕왕1년,702) 77세

일설에 낙산사 의상대 북쪽에 있는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참배 할때 푸른새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상히 여겨

굴앞에서 7일동안 밤낮으로 기도하였더니,

바다위에서 홍련(紅蓮)이 솟아 그 가운데

관음보살이 현신(現身)하였다. 그래서 암자

이름을 홍련암이라 지었다고 한다.

 

(낙산사에 우뚝선 관세음보살 석상)
(빈일루에 올라 멀리 바라본 낙가산상 관세음보살 석상)

(파란 하늘아래 서있는 관음보살  대자대비한 옆모습)

 

(하산하는 길에 석문을 지나며, 조금전에 본 파랑새를 생각하며)

 

(,절에 왔던 우리는  온길 돌아서 집으로 가지만, 뒷절 앞 동해 파도는 철석임을 그치지 않는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송영기 기자  yksongp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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