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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대한독립선언서’박치화, 상해 臨政 중책·활동기록 발굴임정 법무원 법률판리사 겸 경남도찰리사·재무모집기주원 맡아
(사진제공:하동군) 박치화 활동 기록

[하동=글로벌뉴스통신]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1919년 3월 하동에서 지방 유일의 독자적 ‘대한독립선언서’를 만들어 선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일산(一山) 박치화(朴致和·1880∼1947·하동군 적량면) 선생이 3·1운동 이후에도 상해 임시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친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박치화 선생의 후손이 제공한 자료와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박치화 선생 신임장과 통지서에서 선생의 활약상이 담긴 내용을 3·1운동 100년 만에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문건을 분석한 정 소장은 “1927년 10월 상해 임정에서 선생에게 수여한 신임장과 통지서로 임시정부 대통령서리 겸 법무총장 이동녕이 임시정부의 협의를 거쳐 박치화에게 ‘법무원 법률판리사(法律辦理事) 겸 경상남도찰리사(慶尙南道察理使)’와 임정 재무모집기주원(財務募集記主員) 등의 직책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직책은 임정의 법무(法務) 군무(軍務) 재무(財務)를 통괄한다”며 “오늘날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중책으로 선생에 대한 신임이 컸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문건은 지난해 3월부터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군내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와 지난달 정재상 소장이 윤상기 군수와 김경수 도지사에게 보낸 박치화 선생 생가 복원과 기념관 및 공훈비 건립, 하동 ‘대한독립선언서’ 문화재등록에 관한 서한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박치화 선생의 종손자(從孫子) 박명신(85·부산시 남구 용호동)씨의 자료 제공과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문서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선생은 1919년 3월 14일 하동군 적량면 면장 직을 돌연 사직하고, 전국에서 지방 유일의 독자적 ‘대한독립선언서’를 만들어 3월 18일 하동장날 장터에서 12인이 함께 선포, 영호남 지역민 1500여 명과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 독립선언서로 인해 하동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총 17회가 일어났으며, 연인원 1만 2000∼1만 4000명이 참여하고 17명 사망, 95명 부상, 50명이 투옥됐다. 이는 영남에서 가장 많은 횟수의 만세 열기로 이어졌고, 영호남 지역 만세시위를 더욱 촉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한월희 기자  cosmos72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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