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야기 임영서 대표' 롤러코스터 같은 성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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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야기 임영서 대표' 롤러코스터 같은 성공 이야기
  • 한월희 기자
  • 승인 2018.09.01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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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성-웰빙-온라인 SNS 콘텐츠,해외 진출,스테미너 넘치는 건강,통찰력의 경영철학이 성공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한월희 기자) 임 대표는 꾸준한 배움의 철학으로 게으르지 아니하는 경영자다- 경영자의 성장이 멈추면 기업의 성장도 멈춘다는 핫한 말에 기를 받는다.

 [서울=글로벌뉴스통신] 죽이야기로 잘 알려진 임영서 (주) 대호가 대표이사를 인터뷰하러 남산으로 향했다. 6호선 버티고개역 2번 출구 바로 옆 남산 정은스카이빌 1층에 자리하고 있는 본점은 그린 빛으로 친근하게 다가왔다. 바쁜 일정에도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대표님... 임 대표의 수두룩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빗장을 열어보았다.

Q. 출생배경과 죽이야기 창업동기

A. 지금도 버스가 다니지 않는 도시가 있다면 믿을까? 바로 임 대표가 태어났고 지금 사는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2리 상촌계곡 이라는 동네 이야기다. 깊은 산 속에 태어나 그 곳에서 유일한 고급진 문화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는 것이었다.

임 대표는 1남 3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난과 무시 속에서 사는 삶이 싫어 중1 때부터 "가난과 무시는 내 시대에 끝내자"라는 각오로 살았고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17세의 고등학교 때 49세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 슬픔을 이기려 장사를 시작, 전문대를 갔다가 90년도에 다시 대학엘 갔다. 그런데 대학을 가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미국에서 책을 읽는데 "이제는 몇천 명 몇만 명을 고용하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모든 것이 사무자동화가 될 것이다"라는 멘트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은 80년 중 후반이었고 1가구 1창업을 주장하는 시기였다. 한집의 가장이 열심히 일해 4식구가 먹고사는 시대는 끝났다. 부모든 배우자든 직장을 다니면 또 다른 식구들은 창업을 해야 한다는 1인 1창업을 주장한 것이다. 그걸 보면서 미래가 되면 취업이 아닌 창업의 세대임을 직시하여 한국으로 와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때 보인것이 프렌차이즈였다.

그리하여 대학 4학년 졸업하자마자 프렌차이즈 공부를 하려 일본 동경으로 향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론이 프렌차이즈 과가 없어 인테리어 과를 다니면서 일본컨설팅 회사에서 프렌치마케팅을 하면서 지식을 얻게 됐다. 그 후 한국에 와서 프렌차이즈를 하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한데 녹록지 않아 '맥 창업 정보시스템'이라는 창업컨설팅회사를 이끌어가면서 강의와 방송 연구 등을 이끌어 왔지만 사실 음식 장사는 안 좋아 했다. 음식업은 노동집약형 사업이기 때문에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팔려면 사람이 두배로 필요하기에 인건비가 두배로 들어간다. 그래서 음식업은 노동집약형 사업이라고 한다.

2000년대엔 외식업들이 붐이 일어 외식업 컨설팅을 많이 해 주다보니 책을 쓰게 된다. '한눈에 보이는 창업' 과거엔 가난하고 못 살 때는 양 많은 음식이 잘됐지만, 여유와 여가 가치와 건강미를 줄 수 있는 '레저성'이 성공할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당시 "나에게 투자하는 걸 아끼지 말자"라는 웰빙이 사회적 키워드였기에 임 대표가 추구하는 레저성과 맞아 떨어져 2002년에 죽 전문점을 컨설팅하게 됐는데 이게 딱 레저성인 것이어서 "이거야~ 여유와 가치를 줄 수 있는 음식이구나"라고 생각해 2003년에 프렌차이즈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2003년 8월 6일 을지로 골벵이 골목에서 1호점을 오픈하게 되었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한월희 기자) 한식 프렌차이즈의 글로벌화를 위해 계속적인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연구 또 연구하여 풀어 놓고 있다.

Q. 죽이야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A.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웰빙붐에 편승해 죽이야기가 가맹점 모집이나 마케팅에 도움을 받았는데 운이 겹친 것 같다.(운빨의 사나이)

둘째는, 기존의 죽집 이미지를 뛰어넘어 카페테리아를 추구한 아이디어다.(아이디어맨) 
죽이야기에는 죽+ 비빔밥+ 볶음밥+ 음료 +커피까지 결합상품으로 소비자의 입맛에 골라 먹을수 있는 범위를 넓혀 다각화 시킴으로 기존의 죽집과 차별화를 둔 것에 있다.(차별남)

셋째, 당시에는 프렌차이즈 전문가들이 없었다. 밤을 세우고, 프렌차이즈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접하며 오로지 배우고 또 배워 직원들을 훈련했다. 오늘날 프렌차이즈 전문직원을 양성한 것이 브랜드를 오랫동안 올 수 있었던 계기라 생각한다. 죽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17년 동안 계속 이어온 것 중 하나는 3S를 추구했기 때문이다.(열공의 사나이)

또한 3S를 추구하였는데
3S는= Standad(표준화) special(전문화) simple(단순화)과 공장의 CK 시스템(센츄럴 키친)이다.
즉 CK 시스템은 광주 곤지암에 있는 공장에서 중앙식 주방 시스템으로 매장에서 쉽게 조리만 해서 나갈 수 있게 가맹점 마다의 맛의 편차가 없이 본점 맛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중앙식 주방 시스템을 투자 설치하여 아내가 직접 공장대표를 맡고 있으며 식 자재및 소스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Q. 국내 죽시장 규모와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은?

A. 국내 죽 시장 규모가 2003년에는 600억을 봤는데 지금은 2000억 시장을 보고 있다. 죽 전문점과 마트에서 판매하는 죽까지 합하면 죽 시장은 더 크다. 죽이야기는 그린이라는 케치프레이즈로 30대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적중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오프라인상에서 이유식 시장 70%를 장악하고 있는 죽이야기는 전국 450점포의 매장과 중국 2008년 8월 중국 연길 1호점으로 시작하여 36개, 싱가포르 2개, 베트남 2개의 점포가 분포돼 있다. 

요즘은 해외시장에 역점을 두고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를 성공화시키기위해 또 하나의 음식문화 콘텐츠를 알리는 중이다. 해외의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선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한월희 기자) 2008년 중국 연길 1호점으로 해외진출의 포문을 열었으며 미국2 싱가포르2 베트남2의 해외진출로 더욱 바빠지고 있다.

Q. 경영자의 자질과 덕목 성공 비결은?

A. 1. 경영자의 성공이 멈추는 순간 기업의 성장이 멈춘다. 경영자는 늘 깨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지식을 습득하고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는 광고판이 돼야 한다. 특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배우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집이 서울인데 양평에도 있는 집에 가서 주말이면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의 '단서절영'의 말씀을 고고히 생각하며 묵상에 이른다. 『단사절영= 밀실에서 문을 닫아 눈을 감고 고요히 앉는다. 서책이나 일체의 응접하는 일을 다 물리고 생각을 끊고 영위함을 그쳐 심력을 기른다.』는 뜻이다. 단사절영의 시간은 사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는다.

2. 다음은 건강해야 기업을 지킨다. 술을 먹으면 그 다음날에 피곤해진다. 피곤해지면 생각이 부정적으로 들게 된다. 부정적으로 되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경영자는 늘 스테미너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어야 하며 기운도 넘치고 에너지도 넘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운동도 3시간씩 한다. (그래서인지 임 대표의 부지런한 근육이 느껴지기도 했다.)

3. 마지막으로 경영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통찰력'이다. 통찰력은 시간, 사물, 환경 이면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앞으로 3년 후 5년 후 10년 후 어떻게 바뀌고 변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다. 80년도에 미국에서 읽은 책을 통해 지금까지 오게된 것 처럼 통찰력은 경영자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또한 해외시장 개척으로 좋은 기회를 만나고 있는데 지금의 한국은 어떤가? 를 보면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음식점 포화상태이고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상승 등으로 경제시장과 정치를 볼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임 대표는 건대와 세종대에서 프렌차이즈 공부를 하였고 모바일시대에 맞는 4대 혁신으론 1. 상품의 혁신 2. 마케팅의 혁신 3. 교육의 혁신 4. IT의 혁신으로 이제는 가능하면 대중적 마케팅보다는 SNS 온라인 마케팅을 하려 한다. 2000년 전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 "이야기를 말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야기란? 컨텐츠다... 즉 바이럴(바이러스와 오럴의 합성어) 시대다... 혀로 전염시킨다 즉, 브랜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서 확산을 시키느냐가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비싼 돈 들여 광고 하지않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온라인과 SNS란 콘텐츠를 바이럴 시키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고 했다. (참 다양한 경영철학을 듣고 있으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홀릭 되고 있었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한월희 기자) 은은한 카페테리아의 분위기가 아늑해서 좋은 죽이야기 본점 매장

Q. 다음은 영화 이야기... 미친도시에 출연도 했고 연기를 하는 이유는?

A. 어려서는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그런데 어려서 부터 허리가 아파 운동을 계속하는 건 무리수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를 고민하다 보니 연극이였다. 연극의 소질을 알고 MBC 청소년 드라마 '푸른계절'에도 출연하게 된다. 그 당시 KBS에서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히트치면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 후 계속적으로 연기와 연극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연극만으로는 가난에 쫓기는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 같아 잠시 접어두고 일본유학길에서 장사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100억대의 부자가 되면 다시 연기에 도전하리라"고 다짐하며 연기를 중단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업을 해오면서 2015년도에 연극을 하게 되고 후배가 하는 '사랑을 빗다'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영화배우를 하려는 목적은 꿈과 야망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청소년들 다음 세대가 안타깝다. 꿈은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이뤄지는데 막연하게 꾸는 청소년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가르쳐 주고 싶어 연기를 하는 것이다. 

임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목표가 대학교수, 경영자, 영화배우, 아버지가 매각한 토지를 다시 사들이는 것...등등 꿈꿔왔는데 모두 이루어졌다. 

내가 영화배우를 하는 건 다음 세대들한테 "너희들도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다. 세상에서 꿈 없이 목적 없이 사는 것만큼 슬픈 일이 없다"는 것을 자각시켜주고 싶고 꿈을 이루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어 도전하는 것이다.

Q. 영화나 연극작품에 ing라는 날개를 달고!!

A. 최근에 끝낸 연극공연이 있다. '여자의 일생'이라는 악극인데 28일 막을 내렸다.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스포트라이트도 받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8번이나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서서 그랬지 않나 싶다...또한 미친도시에서는 악역인 조폭 두목으로 나와 주인공을 죽이기까지 하는데 뜨악하게 만드는 연기력에 모두 놀라움으로 감탄을 했다. 시사회를 마치고 나온 임 대표를 보고 관객들은 하나같이 "생긴모습과는 달리 잔인하고 악랄하게 나왔는데 어디서 그런 연기를 할수 있냐"" 고 껄껄껄 웃기도 했다.

올해 출연할 영화 3~4개 되는데 뜨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10월 20일부터 베트남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투자하고,베트남 TOP 배우와 출연진들이 촬영에 들어간다. 제목은 'You & I'(너와나)... 영혼이 바뀐다는 내용의 영화...로케이션은 베트남 70% 한국 30% 황경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출연진들은 세 사람 빼고 다 베트남 사람들인데 이국적인 풍경과 환경이 어우러지는 영화  'You & I'가 잘되기를 응원한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한월희 기자) 가난과 무시가 싫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나는 양평에서 비행기를 제일 많이 타는 부자가 될거야"라고 다짐했던 그 어린 소년은 이렇게 근사하게 커서 우리나라 죽이야기의 대표가 되있다.눈물,폭풍,감동.

Q. 대표님 아우라의 뒷 배경은?

A. 첫째, 중1 때 등록금을 안 낸다고 선생님께 꾸중 듣다가 말대꾸했다고 애들 앞에서 맞은 적이 있다. 집에서도 가난하다고 무시당하고 학교에서도 무시당할까? 해서 산속으로 뛰어 올라갔다. 학교도 3일 동안이나 안 가고 뛰어다녔다. 넘어져서 낙엽을 등에 깐 채로 누워 하늘을 보니 비행기가 지나가는데 "난 양평군에서 비행기를 제일 많이타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다짐을 했다. 그 당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제일 부자인줄 알았기에... 산속에서 유일하게 느낄수 있는 현대문명은 비행기였다. 그래서 " 난 양평군에서 비행기를 제일 많이 타는 사람이 될거야!"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뻥쟁이라고 놀렸다.
어릴 적부터 부자가 되겠다고 했는데 내가 왜 낙심을 하지? 나는 가난과 무시에서 벗어날 거야!라고 인생의 목표를 세웠다. 그것이 장사와 경영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

둘째, 어머니가 17살 때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7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 8번째 새어머니와 살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약주 드시면 때리고 아버지가 싫었다. 대학교 4학년 때 공부를 하다 새벽 두 시에 밤나무 화롯불 유독가스를 맡고 화장실 가다 쓰러졌다. 두시간 동안 얼어 굳었는데 4시 30분쯤 아버지가 소죽 쓰러 나오시다 아들을 발견하고는 런링에 스웨터만 걸치시고 63세인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병원을 가기 위하여 1킬로가 걸리는 곳을 등에 엎고 뛰셨다. 그리고 나를 내려놓는데 아버지의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다. 나는 그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 
"아버지가 가난하고 무식해도 우리 아버지인데 옆집아저씨가 우리 아버지가 될수 없고 왜 내가 우리 아버지가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싫어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후로 이제 내 앞에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되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피크와 정상과 나락으로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매일 타게 된다. 그럴 때마다 대학교 때의 경험이 있어서 위기와 어려움이 오면 좀 더 내가 더 자중해야되고 생각하여 뒤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는 계기가 된다. 

(사진:글로벌뉴스통신 한월희 기자) 죽이야기 이영서 대표는 계속된 신메뉴개발과 글로벌한 기업경영을 위해 영화와 음식문화를 접목한 음식 한류 문화를 일으키고 있다.

Q. 끝으로 미래비전을 말씀해 주신다면?

A. 1. 미래비전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이고 한식의 대표 브랜드로서 글로벌하게 나가는 것이다.

2. 난치병 환자나 환우들을 위한 치유센터를 설립하여 음식과 접목한 힐링 치유를 위하여 양평에 만평 정도의 부지를 확보했다. 그 미래비전을 위하여 영화에도 출연하고 죽이야기의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자매 브랜드인 육회이야기, 닥터BOX, 닭갈비이야기 등의 발전을 위하여 꾸준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앞으로 기능성 죽도 개발중에 있으며 최근엔 짬뽕 죽, 돈가스 등을 출시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한마디로 조약돌 같은 경영자였다. 큰 바위나 울퉁불퉁한 돌이 깍이고 쓸려 바다나 강가에 반짝반짝 빛나는 조약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가 필요했을까? 그는 정말이지 콘텐츠가 많은 씽크탱크... 배울 점이 많은 경영자였다...바쁜 스케쥴이 있음에도 끝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어 정말 감사하고 죽이야기가 더욱더 승승장구하여 한국을 빛내는 TOP 기업이 되기를 하늘을 보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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