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왕의 길 복원 - 아관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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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왕의 길 복원 - 아관파천
  • 송영기 기자
  • 승인 2018.08.09 0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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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글로벌뉴스통신]

 

(정동, 복원된 왕의길 - 고종은 새벽에 경복궁 영추문을 나와 궁녀의 교자를 타고 이길을 지나 갔다 )

              

 

 

    정동, 왕(王)의 길 복원

 -고종의 아관파천 과 환궁의 길

 

구름 한점 없는 낮, 불볕이 내려쬐는 불타는 한 낮에 덕수궁

남쪽 돌담길가 서울 시청별관 (옛 대검찰청) 앞 화단에 있는

우암 송시열의 스승인 사계 김장생과 그 아들 신독재 김집의

생가터 표지석을 보고 나서, 주한 미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

앞 텅빈 길을 걸어 올라갈 때, 덕수궁 안 느티나무 숲위에서

우는 말매미 소리가 무더운 여름 한낮의 정취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최근에 복원한 왕의 길을 찿아가서 언덕위 하얀 흙길 담장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훤하게 뚫린 밝은 길을 사진 찍었다.

 

1895년 음력 8월20일 가을에 민비(閔妃)가 경복궁 옥호루에서

무도한 일본 낭인 무사들에게 시해(弑害)된 을미사변이후,

신변의 불안과 공포에 뜬 고종과 왕세자는 1896년 2월 11일

새벽 경복궁 영추문을 극비리에 엄상궁(엄귀비)등의 안내로

궁녀들의 교자를 타고, 친일파 몰래 근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피신하니, 곧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체류기간이 길어지자 국내외의 고종 환궁여론이 비등하여,경운궁

(덕수궁)으로 환궁 할것을 약속하고 시간을 끌다가 이번엔 친러파

의 방해를 무릅쓰고, 1년만인 1897년2월 20일 경운궁으로 왔던길

을  돌아 환궁 하였다.

그리고 아관파천했다가 환궁하여 독립협회의 진언을 받아 그해

1897년 10월 12일 에 국호는 대한(大韓),연호는 광무(光武)로 황제에

즉위하니, 곧 대한제국이 되었다.

1년 반 사이에 경복궁 을미사변,아관파천,경운궁 환궁,대한제국 선포

라는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으니,왕의 길, 고종의길의 그 길

일부가 이제 복원되어 미리 걸어 보았다.

덧붙여서,왕의 길 언덕 담장 아래 있는 조선 저축은행 중역사택

(1938) 인 일제시대의 일본식 호화저택 2채와 수위막사를 수리 보존하여

지난 역사의 귀감으로 삼았으면 한다.

 

              땡볕에  노출된채  땀흘리며 걸어가서,

              옛터에  복원이된 고종의 길 따라갈때,

              참나무 느티나무숲 매미울음 요란하이.

 

              새벽에 서둘러서  은밀한길  지나시고,

              담장끝 작은문칸  화급하게  넘으시니,

              언덕위 공사관 현관 당도하자 안도하네.

            

              믿을건  왕세자에  상궁만을 의지한채,

              근친만  대동하고  궐밖에서 지내신후,

              온길을 되돌아가서 면류관을 쓰셨네. 

 

(작은문을 열고 넘어서면  바로 로서아 공사관이 보인다)

 

(정동 언덕에 일부 남아있는 로서아 공사관 현관 전망탑 부분)

 

(일년후 다시 문을 넘어 온길을 되돌아 경운궁으로 환궁한다)

 

(왕의 길  언덕 아래에 있는 수탈기관 조선저축은행 중역관사- 1938)

 

(그 옆에 있는 또다른  조선 저축은행 중역관사 )

 

(대문안 옆에 있는 작은 수위실)

 

(사진촬영 : 글로벌뉴스통신, 송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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