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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문제점 다함께 풀어봅시다
icon 우찬
icon 2014-11-16 20:56:46  |   icon 조회: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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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문제점 다함께 풀어봅시다.(한국사검증서 중에서: 저작권 주의)
1. 상고사 문제:
 
"한(우주창조자, 一, 마, 無, 태양, 수머리, 제왕)"은  한반도 즉 옛 "마드"의 "밝【영적인 밝음(性明), 태양(칸), 일(一, 칸)】 중에서 일(一)의 발음을 표현한 토속어다. 이 "한"은 대륙으로 건너간 뒤에 발음이 "칸"과  "하나"란 말로 변해서 다시 들어왔다.  “한국"이란 말은 11600년 전에 마칸이 타림분지에 세운 ”칸국(영적인 밝은 나라 또는 태양의 나라)“을 이어받은 국호이다. ”칸(한)“은 11600년 전부터 대략 4000년 전까지 전 세계를 교화로 통치하던 교황의 칭호였다. 먼 엣날 사람들은 태양을 ”칸“이라고 했으며 "칸"의 고고학적 자취는 멕시코에서 36000년 전부터 18000년 전사이에  "칸왕조"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잇다. 멕시코와 한반도는 무려 5만년 전부터 인종과 사상에서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1500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도 피라밋, 언어, 생활관습 등에서 같은 문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류는 당초 인간의 근본을  "밝"으로 여겼으며 그 물질적 표상을 태양으로 삼고 전 인류가  태양을 숭배하는 단일종교였다가 점차 약해졌으나 지금도 불교, 기독교, 회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가 태양(밝)숭배신앙이다.
세계가 하나의 지구연방국, 하나의 가족이었다가 대략 6000년 전부터 물질문명시대가 강화됨에 따라 교화정치가 점점 후퇴하여 4500년 전부터 인류는 전쟁이 많아지는 시대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셰계는 쪼개지고 갈라져서 한국은 한반도 반절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제 막바지 고비가 다가오는데 우리민족이 지금처럼 여야, 좌우,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충돌이 계속되면 결국 멸망하게 되는데 망한 후에야 새로운 나라가 일어나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자기나 자기편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하는 그런 쪽으로 흐르고 있다. 탐욕이 극대화되고 정신타락으로 인하여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와 소통 그리고 화합을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도 온전하게 정리된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허무맹랑하거나 문제투성이다. 기존의 역사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탐욕과 권위만 있고 진실은 무시된다. 그래서 문제들을 다함께 힘을 합해서 풀어나가자는 뜻으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문제 1.
밝검(환웅)과 반고는 은 중앙아시아 사람인데 밝검(환웅)은 시리아지역으로 가서 개국한 후 제1부도를 건설했고 동북아시아에 제2 부도를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고가 돈황지역에서 개국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중국지역의 조상은 반고이다. 밝검(환웅)은 어느 국가의 조상이 아니라 세계의 교황이다.
이유:
①4000년 이상 된 시리아지역의 “신전 앞에 큰 곰 조각상”이 있다. 동북아시아 에서는 왜 곰 조각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가?
②중국사기에 신화나 전설로라도 반고는 나오는데 왜 밝검(환웅)은 나오지 않는가?
 
문제 2.
한검(속칭단군) 또는 한검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사람이다. 동북아시아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단군의 관경은  중국대륙이다.  만주와 한반도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왜 한단고기를 검증하지 않는가? 검증하지 않으면 삼국사기를 한국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소설이고 만화다. 이제 책만가지고 하는 역사지식은 모두 쓰레기다.  검증하는 역사를 해야 진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의 역사지식은 50% 이상이 소설인  셈이다.
 
이유:
①한검(단군)의 영정을 보면 머리에 빵모자를 쓰고 있다.
이 모자는 천주교의 추기경이나 교황이 쓰는 주겟도라는 예복 중의 하나로 변형되어왔다.
이것은 서아시아 지방의 전통과 관습이지 동북아시아의 것은 아니다.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관모나 털모자를 썼다.
 
②아시달의 광역이 “동쪽은 창해, 서쪽은 요서, 남쪽은 남해, 북쪽은 시비로” 이다 고 했으므로 중국사기의 기록에서 "창해"란  "발해" 이전의 이름이니 발해만을 말한다. 이것은 관경을 동쪽으로 확대한 것으로 보지만 일단 이 발해라는 해석은 불변이다. 한국인들 중에 창해를 만주 동쪽과 한반도 동쪽의 동해로 해석하는 사살들이 많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중국사기에서 바다 해(海)자에 대한 기록을 보면:
사마천의 사기권2 본기4의 해(海)의 집해(集解)에,
"서광이 말하기를 바다 해자는 강이라고도 한다.(徐廣曰 海一作河)“고 하였으므로 창해란 반드시 바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큰강을 말하는 용어로도 쓴다는 점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동쪽은 창해“란 해석을 반드시 현재의 바다로만 해석해야 된다는 법은 없다. 한문은 원래 뜻글자였으나 중구인들은 발음기호와 뜻글자를 함께썼기 때문에 바다 해자는 처음에는 발해(대륙, 대평원, 밝달나라), 빙해(시베리아) 등 대륙이나 나라를 말하는 글자였는데 대체로 한나라 때부터 한문을 뜻글자로 많이 쓰는 경향이 나타나게 됨으로서 도해(渡海: 강건너, 황하건너), 청해(청해호), 남해(양자강 남쪽 동정호가 강서성,호남성 남쪽 까지 전체가 호수였을 때), 동해(중국 동해바다)등으로 호수, 강, 바다로 두루 쓰였다. 그러므로”동쪽은 창해”란 서황하, 중황하, 북경지역의 큰 호수 등도 해석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된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사마천의 사기권6 본기13의 海(正義)에 중국의 바다를 해석해 놓은 것이 있다.
"바다란 발해 남쪽의 양주(안휘성), 소주(강소성), 대주(대만) 등지의 동쪽 바다를 말한다.(海謂渤海南至揚蘇台等州之東海也. 曁及也)”고 되어 있으므로 관경에 대한 기록은 후세에 된 것이므로 시대에 따라, 한검의 아시달 중심이동에 따라 창해를 반드시 발해로 한정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시비로를 시베리아로 해석할 때 문제가 있다.  2차대전 중에 소련이 몽고를 점령한 후에 원래의 우랄산맥 남쪽의 시비로를 현재의 시베리아로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한단고기에 시비로가 나오니 원래의 시비로는 우랄산맥 남쪽으므로  단군조선이 서아시아 카스피해 북쪽지역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한단고기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후 그 출처시기를 앞당겨서 우리를 속인 것이 되니 한단고기도 일제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확실한 것은 중국사기에는 조작된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내용들이 상당히 한단고기에 그대로 들어있다. 그런데도 검증하는 역사공부를 한사람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단고기를 진서(眞書)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상식화 되어있다.
한단고기는 역사침략을 위해 강대국들의 음모로 나온 흉악한 책아란 것을 아는사람이 없다.
 
③한문은 그림문자로부터 시작되었으므로 한문은 뜻글자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문자문화에 뒤떨러져서 초기시대는 한문을 대단히 많이 발음기호로 사용했다. 그래서 한단고기를 비롯한 한국과 중국의 고서들이 후세사람인 우리가 볼 때는 옛날의 발음을 적은 것인지 뜻을 적은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발해”는 우리말 “밝은 해 즉 밝해”를 중국발음은 "밝"을 하지 못하고 "박"과  "발, 불, 부, 바, 파 ---"로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발해"로 쓴 글자인데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잘 모르며 밝은 해(빛나는 태양), 밝은 땅, 동방 땅이므로 천산과 일타이산을 남북으로 연결하여 그 동쪽 땅 전체 즉 동북아시아 전체를 발해라고 한 것이다. 즉 발해란 "밝검(환웅)"의 나라인 "밝달"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을 후세에 역사를 기록할 때 어느 좁은 지역적용어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발해라는 이름이 동북아시아 대륙 전체에서에서 서황하 지역으로 적어졌고 또 산동성-강소성, 하북성쪽으로 이동되었다가 마침내 현재의 발해만이 된 것이다.
 
“동이(東夷)”도 이와 같다.
발해는 땅을 말하고 동이는 사람을 말하는데 동이도 역시 중국발음으로 적은 문자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동이의 이(夷)자를 “큰 활을 사용하는 민족, 철을 사용하는 민족”이라는 해괴한 해석들을 하고 있다. 이족(夷族)은 동이, 서이, 남이, 북이가 다 있는데 하필 동이만 좋은 뜻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이는 동쪽 발해 땅에 사는 민족으로서 한문으로 표현하면 “동일(東日)민족”, “동일(東一)민족: 한민족”인데 중국인들은 일(日, 一)을 “이”로 발음하여 발음을 “이(夷)“자로 쓴 것이 후세에는 그렇게 굳어진 것이다. 원래 만주와 한반도는 동이가 아니라 군자국이었다.
 
문제 3.
①한검(단군)세기에 "웅씨의 왕(치우한웅의 제후인 단군)은그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비왕을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하게 했다"
한단고기 단군세기의 지명(地名)들은 일반명사가 아니라 당시의 고유지명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읍"이란 당시에 있었던 고유지명이므로 사기에 있어야 하는데 중국사기 어디에도 없다.
단지 중국고금지명사전에만 나와있다.
중국고금지명사전  P.63.
대읍평(大邑坪):
"사천성 문천현 남쪽에 있다. 절벽진 강가이다. 지세가 막히고 험하다.
 (서쪽의) 금천으로 가는 중요한 길이다.(在四川汶川縣南. 懸崖臨江. 地勢險阻. 爲金川要路)"
 
대읍현(大邑縣):
"한나라 강원현 땅이고 진나라 진원현 땅인데 당나라가 나누어 대읍현을 설치했다. 현은 학명산동쪽에 있다. 그 읍이 광대하여 (대읍이란)이름으로 했다. 청나라 사천성 공주소속이고 중화민국 초에 건창도 소속이다. (漢江原縣地. 晉以後爲晉原縣地. 唐析置大邑縣. 縣在鶴鳴山東. 其邑廣大. 遂以爲名. 淸屬四川工州. 民國初屬建昌道.)"
 
★대읍의 위치는 현재의 사천성 성도 서쪽이다. 비왕(후세의 단군)이 맨처음 통치 능력을 시험받은 곳이 도성에서 아주 먼곳은 아니었을 것이므로 당시 치우한웅의 제후인 웅씨왕(단군)의 치소는 사천성 성도에서 현재의 서안지역 일대로 한정된다.
치우왕조 말기에 제후들의 각축전이 활발한 시기에 웅씨왕(단군)이 요(堯) 단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니 비왕이 치우한웅의 제후인 웅씨왕(단군)의 직위를 물려받아 단군이 되어 아시달이라는 제국을 건설하여 제황이 되니 이때부터는 단군이 아니라 "한검"이다.
한검이 개국한 방법에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한검이 이미 장악하고 있던 사천성 지역에서 새로운 나라의 개국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섬서성과 사천성의 경계를 이루는 대박산(태백산) 남쪽 또는 성도지역에서 건국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당시의 나라들은 규모가 적었으므로 단군(비왕)이 장소를 옮겨서 건국했다고 하더라도 산서성 중부 태원지역에서 북부의 대동지역을 벗어날 필요가 없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하더라도 북부의 대동∼호화호특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단군의 도읍지가 서안지역에서 무려 8000천리나 떨어진 현재의 만주인것처럼 해석하고 인정하는 것은 일제조작의 함정에 빠져서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있음을 아는 사람이 없다.
 
문제4.
북부여기 4세단군 고우루 13년 
"한(漢)의 유철이 평나(平那)를 노략질하여 우거를 멸망시켰다"
고 했는데 "평나"의 "나"는  시대, 왕조, 기록자에 따라 라(羅) 또는 로(盧)로 쓸 수 있고 여러가지 글자로도 쓸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신라, 신나, 사로 등과 같이 "나, 라, 로"를 함께 썼으므로 평나, 평라, 평로는 같은 말이다. 또 한단고기 기록이 후세이니 평라를 평나로 기록할 수가 있다.
 
중국지명사전에서 "평나"는 없고 "평라"를 찾아보면:
평라현(平羅縣)(P.217):
"한나라 북군 북쪽 경계이다. 당나라가 영주 정원의 북쪽 경계로 했다.  명나라 영락초에 평로성을 쌓고 평로수어 천호소(천호 규모의 평로방어사)를 설치했다.  청나라가 "로"를 "라"로 고치고 평라현을 설치했다. 또 나누어서 신거와 보픙 2현을 설치하고 영하부 소속으로 했다. 후에 성단위를 만들었는데 신거,보풍 2현은 평라에 넣고 이전대로 영하부 소속으로 했다. 지금(1911년 이후)감숙성 영하도이다. (漢北郡北境. 唐爲寧州定遠北境. 明永樂初築平盧城. 置平盧守禦千戶所. 淸初改盧爲羅. 置平羅縣. 又分置新渠寶豊二縣. 竝屬寧夏府. 後省新渠寶豊二縣竝入平羅. 仍屬寧夏府. 今屬甘肅寧夏道.)"
 
★한무제가 우거를 멸망시킨 평나는 지금 지도에서 감숙성 영하지치구의 은천과 석차산 사이의 황하변에 있다.
★감숙성 동부의 위원(渭源), 고원(固原), 천수(天水)지역은 11000년 전의 4족분거시대에 청궁씨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이고, 7세 한인 중에서 후대의 한분이 도읍했다는 적석산 지역이고, 태호 복희씨의 봉지로 추정되는 곳이며, 치우한웅의 "리국"영토의 북방지역이고, 한검의 아들 부소의 봉지로서 "고리국"이며  한검부터 이씨조선까지 여러 곳의 평양 중에서 평나, 경양, 평량, 위원 등이 평양이란 지명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며, 길림부여 신라의 최초 탄생지역(경주: 감숙성 경양, 금성: 란주 부근)으로서 지역이름인 신거(新渠)의 신(新)자와 평로(平盧)의 로(盧)를 조합한 이름이 신로(新盧)였는데 후에 신라로 고친이름이다. 또 고구려, 고려, 이씨조선까지의 대동강 상류지역이다.

모든 중국의 사서들은 위만조선이 북경지역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기록만 가지고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위만의 후계자인 우거의 위치 즉 위만조선이 북경지역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단고기를 책대로 공부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좀 깊이 파고들면서 검증하는 연구를 해보면 단군조선의 본래무대가 산서성, 섬서성, 감숙성, 사천성, 청해성 등으로 중국 서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낙랑 즉 위만조선의 진짜 위치는 감숙성 동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한사군이 진짜로 있었다면 한사군의 진짜 위치도 감숙성 동부로 가야 맞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중국은 진짜역사무대를 모두 지우고 그 무대를 모두 산서성, 하북성, 내몽고, 요서지역으로 이동시켜 놓았다가 일제시대에 이것을 고스란히 만주와 한반도에 깔아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파악했으므로 중국사는 소설이고 한국사는 공상만화라고 했으나 사람들은 괴상한 말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해 왔다.
 독자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시대주의와 식민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즉 진짜역사를 하지 않으려면 한단고기와 삼국사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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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6 20: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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