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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영(南小營) 터 장충단(奬忠壇) 원형 복원하고 경관 침해 신라호텔 철거해야
김민수 2015-06-01 19:47:57 | 조회: 2062
남소영(南小營) 터 장충단(奬忠壇) 원형 복원하고 경관 침해 신라호텔 철거해야







​원수부(元帥府)가 어영청(御營廳) 남소영(南小營) 터에 축조한 장충단(奬忠壇)



















http://blog.naver.com/msk7613





















목멱산 동쪽 아래의 장충단(奬忠壇Jangchoongdan)은 1895년에 일어난 일본군국주의(日本軍國主義)가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살해한 을미왜란(乙未倭亂) 당시 일본군을 물리치다 순국한 시위대(侍衛隊) 연대장 홍계훈(洪啓薰), 영관 염도희(廉道希), 영관 이경호(李璟鎬),궁내부 대신(宮內府 大臣) 충숙공(忠肅公) 이경직(李耕稙),고 시종관(侍從官) 충민공(忠愍公) 임최수(林最洙), 고 참령(參領) 충민공(忠愍公) 이도철(李道徹),동학농민운동군을 진압한 통위영(統衛營) 대관(隊官) 김홍제(金鴻濟),장위영(壯衛營) 대관 이학승(李學承),진남영(鎭南營) 대관 이종구(李鍾九) 등을 제향하는 제단이다.제단의 설치는 원수부(元帥府)에서, 제사는 장례원(掌禮院)이 주관하였다.

장충단(奬忠壇:문화재보호구역 500m 안 현상변경 불허가 기본 원칙)은 금천(禁川) 서쪽에는 3층 기단 위에 제단과 15간의 건물로 이루어진 단사(壇祠)인 장충포열(奬忠褒烈),17칸 반의 양위헌(揚威軒), 10칸의 장무당(壯武堂), 금천(禁川) 동쪽에 장충단비, 1간의 비각(碑閣)이 있었다. 부속 건물로 일각문,14간 반의 석장과 화계가 있는 6간의 전사청(典祀廳), 가산(假山),30간의 요리정(料理亭), 고직처소(庫直處所), 3간의 고사(庫舍), 사졸(士卒)의 병사(兵舍), 4간의 측간(厠間)이 있었다. 소나무 가지로 만들어진 송홍예문(松虹霓門), 높이 15미터인 제정(帝政 Empire) 대한국기(大韓國旗)를 4면에 꽂도록 설치된 기주(旗柱), 교량(목교인 대양 판교와 석교인 중판교)도 있었다.





금천(禁川) 서쪽에는 각각 4층 보석을 만들고 고조 광무제 폐하가 편액을 하사한 15간 아치형 문의 장충포열(奬忠褒烈),양위헌(揚威軒), 장무당(壯武堂)의 3채의 당우(堂宇)를 세웠다.위패를 봉안한 장충포열(奬忠褒烈)은 3층 축단 위에 골 뒤로 물러앉았으며 축단 우측에 종을 매달은 종실과 2층 축단 좌우에 장명등이 있다.17간 반인 괴목인 회화나무 두 그루를 심은 양위헌,10간 장무당의 축단 아래에는 열병,분열할 수 있는 넓은 터가 있었다.금천(禁川) 동쪽에는 장충단비(奬忠壇碑)는 장충단에 서 있던 비이고 1900(광무 4)년 대한국 1대 황제 고조 광무제의 어명에 의해 장충단을 지을 때 비도 함께 세워 놓았다. 장충단비는 반듯한 사각 받침돌 위로 비신을 세운 간결한 구조이며 높이 183센티미터,너비 68센티미터,두께 35센티미터이다. 앞면에는 '장충단(奬忠檀)’이라는 비의 명칭이 적혀 있는데 황태자 이척이 쓴 예필이고 뒷 면에는 원수부 회계국 총장 겸임 표훈원 총재 육군 부장 민영환(閔泳煥)이 쓴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단청을 한 1간 비각을 세우고 4면을 회색으로 유칠한 목책을 19간 둘렀다.
















1895년 음력 8월 20일 명성황후(明成皇后:1895년 - 1897년 9월 왕후 민씨)가 건청궁 곤녕합(坤寧閤) 옆 녹원(鹿苑)에서 붕서(崩逝)하였다. 1895년 음력 8월 20일 새벽인 효두(曉頭)에 일본군들이 광화문(光化門)으로 돌입할 때 홍계훈(洪啓薰)이 문을 막는 거문(拒門)하고 역적이라고 소리치자 검(劍)으로 그의 팔을 치고는 곧바로 건청궁 전각(殿閣)의 방실(房室)에 이르러 명성황후인 곤전(坤殿)의 어소(御所)에 달려들었다. 일본군(日本軍)이 손으로 명성황후를 머리채를 휘어잡는 졸계(捽髻)하고 처마끝 헌단(軒端)까지 끌고 가서는 검으로 가슴을 찌른 침흉(揕胸)한 후에 검은 빛깔의 천으로 말아 녹원(鹿苑)으로 옮겨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상궁(尙宮)에게 제보받은 신체적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몸을 검사하는 오욕(汚辱)한 후 셋으로 베어내 석유를 붓고는 불태우는 소화(燒火) 살해하였다. 일본군(日本軍)이 타고 남은 소여(燒餘)한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뼈인 유해(遺骸)를 하체(下體)만 철취(掇取)하여 오운각(五雲閣) 서봉(西峯) 아래에 잠매(潛埋)하였다.





군부 대신(軍部 大臣) 안경수(安駉壽)가 훈련대를 해산하자는 의사를 밀지(密旨)를 19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가서 알렸으며,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禹範善)도 같은 날 일본 공사를 가서 만나보고 알렸다. 8월 20일 날이 밝아오는 미명(未明)에 전(前) 협판(協辦) 이주회(李周會)가 일본군 소대장 오카모토 류노스케와 함께 공덕리(孔德里)에 가서 대원군(大院君)을 호위해 가지고 대궐로 들어오는데 훈련대 병사들이 대궐문으로 마구 달려들고 20여 명의 일본 병사도 따라 들어와 을미왜란(乙未倭亂)이 터졌다. 20여 명의 일본군(日本軍), 친일 훈련대(訓鍊隊) 병졸(兵卒)과 순검(巡檢)이 서로 충돌하여 양편에 다 사상자가 있었다. 시위대 연대장(侍衛隊 聯隊長) 홍계훈(洪啓薰)은 광화문(光化門) 밖에서 살해당하고 궁내 대신(宮內 大臣) 이경직(李耕稙)은 전각(殿閣) 뜰에서 해를 당했다. 이 날 일본군(日本軍)이 상궁(尙宮)에게 제보받은 신체적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몸을 검사하는 오욕(汚辱)한 후 셋으로 베어내는 인상(刃傷)하고 녹원(鹿苑)으로 옮겨서 석유를 붓고는 불태우는 소화(燒火),오운각(五雲閣) 서봉(西峯) 아래에 잠매(潛埋)한 사실을 후에야 비로소 알았기 때문에 즉시 반포하지 못하였다.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총리의 명령을 받은 주한 일본 공사 미우라,육군 소장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20여 명의 일본군(日本軍)을 지휘하고 궁성문을 열어준 친일 훈련대 대대장의 협조를 받아 1895년 8월 20일 경복궁으로 침입하였으며 미야모토 다케타로가 지휘한 20여 명의 일본군(日本軍)은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건청궁(乾淸宮) 곤녕합(坤寧閤)으로 침입하였다.내부(內部)대신의 고문 이시즈카 에조가 일본 정부의 법제국 장관인 스에마쓰 가네즈미에게 보낸 에조 보고서에 따르면 20여 명의 일본군(日本軍)은 건청궁(乾淸宮) 곤녕합(坤寧閤)으로 깊이 들어가 명성황후를 밖으로 끌어내 명성황후(明成皇后:1897년 책봉)를 상궁(尙宮)에게 제보받은 신체적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검사하는 오욕(汚辱)한 후 셋으로 베어내는 인상(刃傷)하고 녹원(鹿苑)으로 옮겨서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 타고 남은 소여(燒餘)한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주검을 태우고 남은 뼈인 유해(遺骸)를 하체(下體)만 철취(掇取)하여 오운각(五雲閣) 서봉(西峯) 아래에 숨겨 묻는 잠매(潛埋)하였다. 일본 정부가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살해한 을미왜란(乙未倭亂)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러시아공사관 이어를 결정하게 하였고 을미독립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1897년 8월 10일 고조 건양대군주(1896-1897.10.12) 폐하가 황단(皇壇)의 제기(祭器), 악기(樂器) 조성 때에 감동(監董)한 궁내부 대신(宮內府 大臣)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施賞)하였다.(조선국은 원단, 제정 대한국은 황단이다.) 1902년 8월 18일 고조 광무제(1897 - 1919)가 칙령을 내리기를 “황제의 어기(御旗), 황태자의 예기(睿旗), 친왕의 친왕기(親王旗)를 지금 조성해야 하는데 일이 지극히 중대하니 따로 기장 조성소(旗章 造成所)를 설치하고 궁내부(宮內府), 의정부(議政府), 원수부(元帥府)에서 이 일을 감동하게 하라. 나라의 법을 상고하고 각 국의 규정을 참고하여 제도를 품정(稟定)하되 군기(軍旗)도 똑같이 만들게 하라.”하였다. 또 칙령을 내리기를 “의정부 의정(議政府 議政) 윤용선(尹容善)을 기장 조성소(旗章 造成所) 감동 대신(監董 大臣)에, 원수부 총장 민영환(閔泳煥), 궁내부 대신 서리(宮內府大臣 署理) 윤정구(尹定求)를 감동 당상(監董 堂上)으로 삼으라.”하였다.











1900년 10월 27일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 Gojo Gwangmooje:1897-1919)가 전(前) 어영청(御營廳)의 분영(分營)인 남소영(南小營)의 유지(遺址)에 순국(殉國)한 충렬(忠烈)에 제사지내는 장충단(奬忠壇)을 세웠다. 대한국 황제 직속의 최고 군통수기관인 원수부(元帥府)에서 칙령(勅令)을 받들어 나랏일을 위해 졸(卒)한 충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1901년 2월 16일 육군법원장(陸軍法院長) 백성기(白性基)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드러내 표창하는 것은 임금이 세상 사람들을 격려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의리를 지키고 절개를 위해 졸(卒)한 신하가 있으면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니, 6신사(六臣祠)나 4충사(四忠祠) 따위가 이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근년에 의리를 지켜 졸(卒)한 정승이나 재상들에 대해서만은 아직껏 미처 그렇게 해주지 않고 있으니, 이 것이 어찌 흠이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그러한 사람을 일일이 열거해 보겠습니다. 이를테면 임오년(1882)에 절개를 지켜 졸(卒)한 고(故) 영의정(領議政) 충익공(忠翼公) 이최응(李最應), 고 판서(判書) 문충공(文忠公) 김보현(金輔鉉), 고 판서 충숙공(忠肅公) 민겸호(閔謙鎬), 고 참판(參判) 충정공(忠貞公) 민창식(閔昌植)과 갑신년(1884)에 절개를 지켜 졸(卒)한 고 찬성(贊成) 충문공(忠文公) 민태호(閔台鎬), 고 판서 충문공(忠文公) 조영하(趙寧夏), 고 판서 문충공(文忠公) 민영목(閔泳穆), 고 판서 충숙공(忠肅公) 한규직(韓圭稷), 고 참판 충정공(忠貞公) 윤태준(尹泰駿), 고 참판 충정공(忠貞公) 이조연(李祖淵), 중관(中官) 류재현(柳載賢)과 을미년(1895)에 절개를 지켜 졸(卒)한 고 궁내부 대신(宮內府 大臣) 충숙공(忠肅公) 이경직(李耕稙), 고 시종관(侍從官) 충민공(忠愍公) 임최수(林最洙), 고 참령(參領) 충민공(忠愍公) 이도철(李道徹)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들이 죽음으로 절개를 드러낸 것이 옛 충신들보다 무슨 크게 못한 점이 있다고 겨우 자기 집 사당에서 제사나 받을 뿐 따로 한 칸의 사당도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 충성에 보답하고 절개를 표창하는 은전에 있어 과연 어떠합니까? 지난 날 장충단(奬忠壇)을 특별히 만들어 제사를 지낸 뒤로 군사들이 이루 형언할 수 없이 감격하고 고무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여러 신하들이 한 목숨 바쳐 순국(殉國)한 충렬(忠烈)은 실로 한 때의 싸움에서 졸(卒)한 장수나 군사들보다 더한 점이 있는데 단지 군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유독 제단에서 제사지내는 대상에 끼지 못하였으니 선후가 도치되었다고 할 만합니다. 따로 하나의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면 저 세상에 있는 충성스럽고 의로운 혼백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속히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대책을 강구하여 시행하게 하소서.”하니, 고조 광무제가 비답하기를 “충성을 표창하고 절개를 장려하는 데 어찌 문관과 무관을 구별하겠는가? 진달한 내용은 자못 일리가 있으니 장례원(掌禮院)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도록 하겠다.”하였다.
2015-06-01 19: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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